故 이건희 회장, K-스포츠 발전에도 큰 발자취
상태바
故 이건희 회장, K-스포츠 발전에도 큰 발자취
  • 한종훈 기자
  • 승인 2020.10.25 14: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한 레슬링협회장·삼성라이온즈 구단주 역임
‘세리팀’ 꾸려 전폭 지원, 여자골프 발전 앞장
IOC 위원으로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이끌어
故 이건희 회장(왼쪽)이 지난 2000년 9월 시드니 올림픽대회 기간에 IOC 본부 호텔에서 열린 KOC 리셉션에서 故 김운용 IOC 위원과 건배하는 모습. 사진= 연합뉴스.
故 이건희 회장(왼쪽)이 지난 2000년 9월 시드니 올림픽대회 기간에 IOC 본부 호텔에서 열린 KOC 리셉션에서 故 김운용 IOC 위원과 건배하는 모습. 사진= 연합뉴스.

[매일일보 한종훈 기자] 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한국 스포츠 발전에도 큰 발자취를 남겼다.

이건희 회장은 야구광으로도 유명하다. 일본 유학 시절부터 야구를 좋아하기 시작해 지난 1982년 프로 원년부터 2001년까지 프로야구 삼성 구단주를 지내기도 했다.

이 회장의 진두지휘 아래 선진 야구기술의 접목과 어린이 등 아마야구 저변 확대를 강조하면서 초·중·고 야구대회를 개최했다. 홈런왕 이승엽, 에이스 투수 배영수 등을 발굴했다. 삼성도 그룹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에 초창기부터 명문 구단으로 확고히 입지를 다졌다.

특히 이 회장은 지난 2014년 의식이 없는 채 병상에 누워있었는데 5월 25일 당시 대구 넥센 전에서 이승엽이 3점 홈런을 터트렸다. 당시 이 회장은 떠들썩한 분위기에 잠시 눈을 떴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또, 이 회장은 프로 및 아마추어 스포츠 여러 종목 창단과 운영을 주도해 한국 스포츠 저변 확대에도 큰 업적을 남겼다. 삼성은 프로야구, 프로축구, 남녀 프로농구, 프로배구단과 탁구, 레슬링, 배드민턴, 육상, 태권도팀 등을 운영하고 있다.

지금 현재 세계를 호령하는 한국 여자 골프 초석도 다졌다. 삼성그룹은 지난 1995년 박세리가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메인 스폰서를 맡았다. 세계 최고의 골프 교습가인 미국의 리드베터의 문하생으로 들어가게 해 집중적인 수련을 받도록 하는 등 ‘세리 팀’까지 꾸려 물심 양면으로 지원했다.

이 회장은 박세리를 직접 그룹 영빈관인 승지원 등으로 초청,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박세리가 LPGA 투어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박인비 등 수 많은 ‘세리키즈’가 나타났고, 한국 여자골프는 현재 세계 최고로 올라섰다.

서울사대부고 재학 시절 레슬링과 인연을 맺은 이 회장은 1982∼1997년 대한레슬링협회 21∼24대 회장을 지내며 한국 레슬링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이 회장 재임 당시 한국 레슬링은 올림픽 7개, 아시안게임 29개, 세계선수권 4개 등 40개의 금메달을 수확했다.

스포츠 외교관 역할도 이 회장의 몫이었다. 이 회장은 삼성그룹 회장에 오른 1987년 이전부터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상임위원을 역임했다. 1993년부터 3년간 KOC 부위원장을 거쳐 1996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IOC 위원으로 선출돼 스포츠 외교 전면에 나섰다.

특히 이 회장은 IOC 문화위원회(1997년), 재정위원회(1998∼1999년)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동료 IOC 위원들과 쌓은 친분을 활용해 강원도 평창이 세 번의 도전 끝에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는 데 공을 세웠다.

이 회장이 이끄는 삼성전자도 올림픽 무선통신 분야 공식 후원사로 IOC와 인연을 맺었다.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을 시작으로 두 차례 계약 연장을 거쳐 2028년 로스앤젤레스 하계올림픽까지 30년간 올림픽을 지탱하는 IOC 최고 레벨의 후원사로 자리매김했다.

이 회장은 이후 심장 스텐트 시술을 받고 치료에 전념하고자 정년(80세)을 5년 남긴 2017년 IOC 위원직을 사퇴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