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 별세]1993년 신경영 선언…이건희가 남긴 경영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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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 별세]1993년 신경영 선언…이건희가 남긴 경영철학
  • 조성준 기자
  • 승인 2020.10.25 12: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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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독일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삼성 ‘신경영 선언’
양(量)보다 질(質) 우선시…디자인·체질 개선도 강조
25일 타계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 제공
25일 타계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 제공

[매일일보 조성준 기자] “지금처럼 잘해봐야 1.5류다. 극단적으로 얘기해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나온 이건희 삼성 회장의 ‘일갈’은 경영의 중심을 양(量)이 아닌 질(質)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고, 결과적으로 명실상부한 ‘글로벌 삼성’의 밑거름이 됐다.

‘프랑크푸르트 선언’으로 불리는 이 회장의 신경영 선언은 ‘삼성사(史)’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으로 꼽히는 순간이자 이 회장의 생전 경영철학을 보여주는 것으로 지목된다.

이 회장은 신(新)경영을 선포한 1993년 6월 7일부터 8월 4일까지 68일간 독일, 스위스, 영국, 일본을 오가며 1천800명과 350시간에 걸쳐 간담회를 했다. 사장단과는 800시간이 넘는 토론을 이어갔다. 평소 ‘말하기’보다 ‘듣기’를 즐기는 과묵한 이 회장이지만 이 기간에는 자신의 경영철학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삼성그룹은 당시 이 회장이 한 발언을 33개 주제로 분류해 ‘지행 33훈’으로 정리했다. A4용지 8천500장에 이르는 방대한 양이다.

지행이란 알고(知), 행동하며(行), 쓸 줄 알고(用), 가르치고(訓), 평가할 줄 아는(評) ‘지행용훈평’의 준말이다. 이 회장은 리더의 덕목으로 이 다섯 가지 요소를 꼽았다.

지행 33훈에 실린 가장 대표적인 경영 철학은 경영의 중심을 양(量)이 아닌 질(質)로 옮겨야 한다는 ‘질 경영’이다.

질 위주의 경영으로 전환해야만 국제화·복합화·경쟁력 제고가 가능하며, 이를 바탕으로 21세기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로부터 10년 후 이 회장은 ‘위기의식 재무장’을 주문했으며, 신경영 선포 20주년에도 “20년이 됐다고 안심해서는 안 되고 항상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기의식은 이 회장이 제시한 장수 기업의 첫 번째 조건이기도 했다. 그는 자서전 ‘생각 좀 하면서 세상을 보자’에서 “진정한 위기의식은 사업이 잘되고 업계 선두의 위치에 있을 때 앞날을 걱정하는 자세”라고 정의했다.

미꾸라지가 있는 곳에 메기를 풀어놓으면 미꾸라지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튼튼해지는 방법을 터득하듯, 기업이 성장하려면 적절한 자극이 필요하다는 ‘메기론’도 이러한 위기의식에 바탕을 뒀다.

◆기업 경영서 ‘디자인’ 중시한 이건희…2014년부턴 ‘마하 경영’

디자인 경영도 이 회장이 강조한 경영철학 가운데 하나이다.

이 회장은 기획력과 기술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디자인이 약하면 다른 요소까지 그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돼 상품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1993년 우수 디자이너를 발굴하는 ‘디자인 멤버십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1995년 디자인학교 삼성디자인스쿨(SADI)을 설립했다.

이어 1996년 신년사에서 “올해를 ‘디자인 혁명의 해’로 정하고 우리의 철학과 혼이 깃든 삼성 고유의 디자인 개발에 그룹의 역량을 총집결해 나가자”고 선언했다.

이듬해에는 ‘자랑스러운 삼성인상’에 디자인 부문을 추가했다. 자랑스러운 삼성인상 수상자는 1직급 특별 승진하며, 상금으로 1억원을 받도록 했다.

2005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주재한 디자인 전략회의에서는 독창적 디자인과 UI(사용자 환경) 구축, 디자인 우수 인력 확보, 창조적이고 자유로운 조직문화 조성, 금형 기술 인프라 강화를 골자로 하는 ‘제2의 디자인 혁명’을 선포했다.

1995∼2005년(디자인 1.0) 얇고 가벼운 제품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면, 2006∼2010년(디자인 2.0)은 소비자의 욕망·호기심·기쁨을 디자인에 반영하려 했다는 설명이다.

2011년부터는 디자인으로 가치를 창출하겠다며 ‘디자인 3.0’을 기치로 내걸었다. 여기서 말하는 가치 창출이란 디자인만으로도 사용자에게 만족감을 주는 것을 뜻한다.

이 회장은 2014년부터 마하(Mach) 경영을 내세우기도 했다.

마하 경영이란 이 회장이 2002년 “제트기가 음속의 2배로 날려고 하면 엔진의 힘만 두 배로 있다고 되는가. 재료공학부터 기초물리, 모든 재질과 소재가 바뀌어야 초음속으로 날 수 있다”고 발언한 데서 유래한 개념이다.

제트기가 음속(1마하는 초속 340m)을 돌파하려면 설계도는 물론 엔진·소재·부품을 모두 바꿔야 하는 것처럼 삼성이 초일류기업이 되려면 체질과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논리였다.

이 회장은 2014년 신년사에서 “다시 한번 바뀌어야 한다. 변화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시장과 기술의 한계를 돌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하 경영의 핵심은 바로 ‘한계 돌파’라는 게 삼성그룹의 설명이다.

이후 삼성그룹은 마하 경영의 추진 방향으로 차세대 성장동력 발굴, 미래 변화의 흐름을 주도할 신기술 개발, 경영 전 분야에 대한 총체적·근본적 혁신, 창의적이고 소통·상생하는 기업 실현으로 설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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