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증권사 중징계 무엇을 위한 희생제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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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증권사 중징계 무엇을 위한 희생제의인가
  • 황인욱 기자
  • 승인 2020.10.1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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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황인욱 기자] 금융당국이 라임펀드 사태와 관련된 주요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들에게 중징계를 통보하며 업계 우려가 커지고 있다. 김병철 신한금융투자 전 사장과 박정림 KB증권 대표, 윤경은 전 KB증권 대표이사, 나재철 전 대신증권 대표이사 등은 ‘문책경고’ 이상을 받을 걸로 보인다. 문책경고 이상의 제재를 받게 되면 향후 3년간 금융사의 임원 선임이 제한된다. 그런데 이들이 ‘옷을 벗는다’고 해서 사모펀드 시장이 ‘정상화’될지는 의문이다.

희생제의는 문명에 오랜 관습이다. 신화학자인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는 ‘희생양’이라는 제목이 붙은 ‘황금가지’ 제3권에서 원시공동체 사회에서 재앙을 당한 인간은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물체, 동물, 사람에게 ‘재앙 옮기기’를 해왔다고 말한다. 제물은 사회의 과오와 부정적인 것들을 떠안고 희생됨으로서 사회의 안녕을 가져온다.

예시는 무수하다. ‘트로이 신화’에서 그리스 진영의 총사령관 아가멤논은 파도로 아울리스 항에 발이 묶여 원정군이 출항하지 못하자 처녀인 ‘자신의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친다. 수렵과 순결의 신인 아르테미스의 분노를 가라앉히고 항해를 시작하기 위해서였다. 

아즈텍문명은 대규모 인신공양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아즈텍문명의 사제들은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적군 포로’의 팔다리를 구속한 상태로 흉부를 흑요석으로 만든 칼로 베어낸 후 심장을 꺼내 제단에 바쳤다. 아즈텍신화에 따르면 태양이 뜨기 위해선 태양신에게 제물을 바쳐야만 한다. 제단이 피로 물들어야 태양신의 마음을 움직여 ‘시간’이 흐를 수 있었다.

문명국가에서도 희생제의는 이어진다. 프랑스 혁명에서 ‘루이 16세’의 단두대 처형은 공화정으로 나아가기 위한 희생제의로 볼 수 있다. 루이 16세의 단두대형은 왕정이 폐지되고 새로운 세상이 도래하기 위한 상징적인 의식이다.

현대사회에서도 희생제의는 반복된다. 과거처럼 목숨을 내놓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적 직위를 내려 놓고 불명예스럽게 떠나야 한다. 소위 ‘옷을 벗어야’ 한다. 책임자가 희생제의의 제물처럼 부정적인 것들을 떠안고 외부로 던져짐으로서 사회는 안정을 되찾고 새 시작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증권사 CEO’ 중징계 예고는 희생제의 메커니즘에 맞지 않는다. 일단 제물이 적합하지 않다. 책임을 떠안고 사라지기에는 어딘가 부족하다. 업계 관계자들은 대표를 징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입 모은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라임사태의 정확한 과실이 명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징계부터 하겠다고 하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금감원이 지적하는 내부 통제 미흡은 명확한 징계사유가 되지 않는다”며 “도대체 내부 통제 미흡이라는 게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CEO 중징계’라는 희생제의로 업계에 작용할 긍정적인 결과도 상상하기 어렵다. 증권업계는 금융당국이 이런식으로 판매사를 압박하기만 하면 사모펀드를 누가 팔겠냐고 되묻고 있다. 시장 정상화 효과가 없다는 말이다. 오히려 그 반대다. 사모펀드 시장 위축이 이번 희생제의의 목적이라면 증권사 CEO 중징계는 탁월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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