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직장 판타지’가 남긴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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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직장 판타지’가 남긴 교훈
  • 이선율 기자
  • 승인 2013.05.22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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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율 사회부 기자

[매일일보]‘국내 최초 자발적 비정규직’이라는 타이틀 아래 3개월 단기계약직으로만 일하는 여자사원을 주인공으로 앞세워 정규직과 비정규직, 청년실업 등에 관한 사회전반의 문제를 신랄하게 풍자해온 드라마 ‘직장의 신’이 지난 21일 종영됐다.

일본 드라마 ‘파견의 품격’을 리메이크한 이 드라마는 이 시대의 여러 사회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면서 ‘현실적’이란 호평을 받아왔지만 실제 장르를 굳이 구분한다면 ‘직장환타지’에 가까워 보인다.

수당 없는 추가근무, 엄연한 ‘권리’인 연차·월차·생리휴가를 냈다고 상사에게 면박 당하는 분위기, 임신은 곧 계약만료라는 여성 비정규직의 공포감 등 현실사회를 보여주면서 이 모두를 거부하고 이겨내는 초인적 주인공의 영웅적인 모습이 주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시간외 근무는 물론 회식까지 거부하는 ‘미스김’을 향해 팀장은 “그러니까 당신이 계약직인 거다. 책임감도 배려심도 없다”고 쏘아붙인다. 대다수의 ‘비자발적 비정규직’을 향해 “당신이 그런 처지인 것은 모두 당신 자신 탓”이라고 비난하는 것이다.

이 말을 맞받아치는 미스김의 답변이 걸작이다.

“그러니까 당신이 정규직인거다. 그런 쓸데없는 것을 더 가지라고 회사에서 돈을 더 주는 거니까. 계약직은 계약된 일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런 당당함의 원천은 두 가지에서 나온다.

모든 능력 면에서 자신이 그 회사 내의 누구보다 우월하다는 자신감과 어떤 일이 있어도 계약연장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 회사에서의 근무가 3개월로 끝날 것이라는 확신이다.

먹고살기 빠듯한 이 세상에서 이런 당당함은 대다수 평범한 비정규직들의 시선으로는 ‘뱁새다리 찢어질 일’이겠지만 희소성이 있는 국가면허나 특수 자격증을 갖고 있는 ‘프리랜서 전문직’이라면 미스김과 유사한 마인드를 가지고 살아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계약직은 책임감도 배려심도 없다”는 비난에서는 교훈(?)도 찾을 수 있다.

기업들이 책임감과 배려심이 있는 능동적 직장 문화를 원한다면 비정규직을 남발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비정규직을 썼다면 ‘애사심’ 같은 것은 요구하지 말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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