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무료 독감백신과 건강 양극화
상태바
[기자수첩] 무료 독감백신과 건강 양극화
  • 김동명 기자
  • 승인 2020.10.07 10: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매일일보 김동명 기자] “무료 백신 무서워서 못 맞겠다. 돈이 없냐. 차라리 유료 백신 맞아야지”

최근 국가 독감 백신 무료 접종 대상자에 포함된 만 62세 이상 분들에게 기자가 무료 백신 인식에 대해 물어볼 때마다 돌아오는 답변은 한결같았다. 추석 연휴 모여 앉은 기자의 친인척들도 무료 백신 대상자였지만 두려워서 국가 백신을 맞지 못하겠다는 분들이 대다수였다.

이처럼 올해 국가 백신 사업은 사실상 실패나 다름없다.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의료 사업의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국가가 무료로 보건 서비스를 제공해 준다고 해도 믿음직스럽지 않으면 혜택을 거부할 만큼 우리 국민은 성숙해있다.

문제는 초기 유료 백신을 접종했던 시기보다 현재 백신 가격이 폭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독감 백신이 본격적으로 시작했을 때 소비자 접종 가격은 2만 원대 후반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4만 원을 넘어서면서 국민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주변 어르신들도 “누구는 2만8000원에 맞았다는데 왜 난 4만원이나 줘야 하냐”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정부의 무료 백신에 배신당하고 의료기관에 또다시 농락당하는 꼴인 셈이다.

유료 백신은 수요와 공급체계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최근 무료 백신 불신으로 인한 유료 백신 수요 폭증으로 가격 또한 계속 상승하고 있는 추세다. 더욱이 가격이 점점 올라간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유료 백신을 접종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덩달아 몰리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더욱 각박해진 사회 취약계층들은 불안함을 느끼면서도 어쩔 수 없이 무료 백신을 접종해야만 한다.

과연 독감 백신만의 문제일까? 코로나19 백신이 본격적으로 공급되기 시작하면 이러한 순환은 반복될 것이다. 국가는 취약계층을 위한 무료 백신 공급계획을 발표하겠지만 대부분에 국민들은 유료 백신을 채택하고 자신이 원하는 제약사의 백신을 선택할 수 있는 결정권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취약계층은 자신이 어떤 경로를 통해 유통됐을지 모를 백신을 접종 받으면서 불안에 떨어야 할지도 모른다. 정부 사업에 대한 불신은 이토록 잔인한 양극화를 불러일으킬 확률이 높다.

유통뿐 아니라 민간의 총판사, 도매상을 거치면서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의약품이 국가의 손을 떠나 명확한 규정 없는 불안정한 경로로 보급된다는 사실까지 이번 사건을 통해 깨닫게 됐다.

아무리 질병관리청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공동 조사를 통해 상온 노출 백신의 안정성과 품질에는 이상이 없다고 밝혔지만, 바닥까지 추락한 무료 백신의 신뢰를 희석시키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상온 노출 독감백신 사태는 시작에 불구할 수 있다. 이번 일을 교훈 삼아 하루빨리 국민 건강과 밀접한 국가 예방접종 사업 체계를 뜯어고쳐야 한다.

담당업무 : 제약·바이오, 병·의원 담당합니다.
좌우명 : 즐기려면 우선 관심을 가져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