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 백신] 한명도 없다더니 2300여명 접종…정부 책임론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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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 백신] 한명도 없다더니 2300여명 접종…정부 책임론 커진다
  • 김동명 기자
  • 승인 2020.10.05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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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현장서 백신 관리 허술…무료 백신 앞당겨 사용한 정황도 포착
의료계 “터질게 터졌다”…공익적 목적 사업 민간에 맡겨 무질서 초래
당초 상온 노출 인플루엔자(독감) 백신 접종자가 없다던 보건당국의 주장과 달리 피해 사례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어 정부의 책임론이 커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매일일보 김동명 기자] 운송 중 상온 노출이 의심돼 사용을 중단한 인플루엔자(독감) 백신 접종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가운데, 당초 해당 백신을 접종 받은 사람이 한명도 없다고 발표한 질병관리청과 국가 백신 사업을 진행한 정부 등이 책임을 회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심지어 지난 2일 당국은 상온 노출 백신 접종자가 2303명이라고 공식 발표했지만 다음날 8명 적은 수치로 정정하는 등 정부의 집계가 오락가락하는 모습이다.

5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독감 백신 무료사업이 중단된 지난달 22일부터 지금까지 상온 노출 백신을 접종한 것으로 파악된 사람은 2300여명으로 조사됐다. 9월 25일 이후부터 105명→224명→324명→407명→873명→1362명→1910명→2290명→2295명으로 연일 증가하는 추세다.

현재 각 지방자치단체 보고를 통해 독감백신 접종 사례를 집계한 결과 접종 사례가 가장 많은 곳은 경기, 광주, 전북 등으로 전국 280곳에 달한다. 강원과 울산에서는 접종 사례가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의료기관이 아직 현황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을 것으로 질병청은 보고 있다.

보건 당국이 해당 백신을 접종 받은 사람이 없다고 발표했지만 이후 접종자가 증가하는 이유는 일부 병·의원 등 의료기관에서 국가 백신 사업의 지침을 어기고 자의적으로 소비자에게 백신을 제공하거나 관리 부실로 인해 유료 백신과 섞여 물품을 관리한 것으로 파악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북 전주시 한 병원은 유료접종 대상자 60명에게 무료접종 물량을 맞춘 사실이 드러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접종자가 몰리자 몇몇 의료기관이 무료 접종 물량을 앞당겨 사용했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의료기관은 통상 개별 경로를 통해 구비한 유료접종 물량과 정부 무료 백신 사업을 위해 받은 무료 접종 물량을 따로 관리해야 하지만 이를 섞어서 방치하거나 유료 접종 수요가 있을 때 무료 접종을 위해 구비한 물량을 제공하는 등 관리 부실이 드러난 셈이다.

일각에서는 터질게 터졌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공익적 목적으로 진행되는 사업을 온전히 민간에만 맡겨 놓다 보니 무질서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책임론이 크다는 지적이다.

의료계 관계자는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유통 문제부터 국가필수예방접종(NIP) 환급 문제까지 총체적인 난국인 상황이다”며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한 국가 조달 시스템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상당수 병의원에서는 NIP를 포함해 예방 접종에 필요한 백신이 지나치게 복잡한 구조로 유통되면서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기타 약제나 의료기기, 지역별, 병의원별로 유통 구조가 다르게 진행되면서 사입가부터 NIP에 필요한 조달가까지 뚜렷한 가이드라인이 없다.

올해 수입 백신으로 NIP에 참여한 사노피의 경우 소아청소년과 병의원만 직접 유통을 진행하고, 내과나 가정의학과는 국내 총판인 한독약품에서 담당하는 등 하나의 백신이 제조사, 총판사, 도매상을 통해 총 3가지 방식으로 유통됐다.

소비자 가격 차이도 발생한다. 소아과의 경우 공급가인 1만410원에 유통됐지만 한독약품을 통해 납품된 곳은 담당자별로 1만6000원부터 2만원대까지 천차만별이다.

이렇듯 의료계에서는 NIP 백신 공급을 둘러싸고 수많은 문제점들을 취합해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공공적 성격의 NIP를 민간 의료기관에 수탁했다면 이에 대한 공급 또한 정부가 책임지고 완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백신을 공급받는 병의원들의 불만도 높아지고 있다. 백신을 어떻게 받느냐에 따라 환급 시스템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백신을 2만원에 받은 병원이 무료 백신 대상자에 접종할 경우 1만410원 이상의 차액을 환불 받아야 하는데 중간 도매상이 복잡해짐에 따라 온전히 환급받지 못하는 상황까지 발생할 수 있다.

독감백신을 접종중이 한 병의원 관계자는 “백신 접종 희망 환자마다 누구는 얼마에 맞았는데 왜 여긴 더 비싸냐고 묻는다”며 “정부의 복잡한 조달방식 때문에 국민이 피해를 보고 있는데, 의료기관만 죄인이 되는 기분이라 마음이 좀 그렇다”고 말했다.

담당업무 : 제약·바이오, 병·의원 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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