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투기 되려 부추기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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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투기 되려 부추기는 사회
  • 김정우 기자
  • 승인 2020.09.28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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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김정우 기자] ‘빚투(빚내서 투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 부동산 또는 주식에 대출 등 가용한 모든 재원을 쏟아 붓는 작금의 투자 행태를 빗댄 표현이다. 이제는 어지간히 익숙한 표현이라 신문 기사 제목이나 일상 대화 속에서도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그 만큼 자산 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보편화 됐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돈을 벌고 자산을 축적하는 것은 언제나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였다. 신도시 개발에 돈이 몰리고 주택 분양을 받기 위한 발길이 바쁘게 움직인다. 제한된 공급에 비해 넘치는 수요가 자산의 미래가치 상승을 기대하고 투자하는 이 같은 행위는 시장경제 체제에서 지극히 자연스럽다. 그런데 유독 최근 극단적인 투자 행태가 만연하고 주목을 받는 이유는 뭘까?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불안감’일 것이다. 치솟는 물가에 비해 체감 소득 수준은 제자리걸음이고 취업이나 창업이나 경쟁은 날로 치열해져 기회의 창은 점점 좁아져만 가는 것처럼 보인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더욱 위축된 경제활동은 돈이 원활하게 돌지 못하게 해 내수경기 침체를 부추기고 부실화 된 기업·개인 부채에 부담이 더해진 금융권마저 언제까지 완충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불안감이 커진다.

특히 젊은이들은 눈부신 미래를 준비하기 전에 행여 닥쳐올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경제적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는 조바심을 갖게 된다. 적어도 분주하게 투자를 준비하는 주변을 보면 ‘나만 뒤쳐질 수 없다’는 심리적 강박이 작용하기 십상이다. ‘투자에 내몰렸다’는 표현도 무리는 아니다.

정작 개인투자자 운신의 폭은 크지 않다. 자금 조달 측면에서 정부의 부동산 규제로 주택담보대출은 요원해졌고 그나마 낮아진 금리로 수요가 몰리던 신용대출 문턱도 다시 높아지는 추세다. 투자처 측면을 보면 얼어붙은 부동산 시장에 비해 널뛰는 주식 시장 투자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만 그 만큼 위험성도 크다. 특정 공모주 청약에 너도 나도 뛰어들어 가치를 부풀리거나 충분한 리서치 없이 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같은 행태는 경제 전반의 위험성을 키운다. 고평가된 주식은 떨어지기 마련이고 체력이 제한적인 개인투자자들이 떠받치는 증시는 한 번에 무너질 수 있다. 이는 다시 투자자를 경제적 빈사 상태로 내몰고 부실 채권을 양산해 금융권에 부담을 안긴다.

그럼에도 단기간에 돈을 벌었다는 주변의 사례를 보면 손 놓고 있기도 어렵다. 월급 통장만 바라보다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어 대출 한도를 조회해본다. 시장의 균형을 위협하고 상대적 박탈감을 키우는 것은 투기의 대표적인 부작용 아니던가. 불건전한 투기는 정부가 강조해온 공정의 가장 큰 적이다.

위기 상황일수록 정부는 돈이 회전할 수 있도록 물꼬를 터 건전한 경제활동을 유도해야 한다. 공급된 유동성이 구석구석 돌아야 사업과 고용이 유지되고 새로운 기회를 위해 주택 등 자산 매매도 이뤄진다. 이 과정에서 ‘공정한 기회’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한 쪽이 막혀 다른 한 쪽에 투자할 수밖에 없고 뒤쳐지기 싫어 투자에 내몰리는 상황은 불건전한 투기를 조장한다. 부동산 가격을 잡는다고 대출을 옥죄고 그때그때 넘치는 부분을 막아봤자 변수와 불안감을 키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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