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업체 신고 없었다면 ‘불량 백신’ 고스란히 유통
의료계 “이상 없더라도 백신 효과까지는 장담 못해”
[매일일보 김동명 기자] 유통 과정에서 인플루엔자(독감) 예방 백신이 상온에 노출된 사고가 발생하면서 정부의 관리감독 부실이 초래한 예견된 사태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경험 없는 유통사, 하청의 재하청 구조, 주무기관의 관리감독 부실 등이 복합적으로 발생한 인재(人災)라고 보는 시각이 다수다.
24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신성약품은 유통 전 과정에서 콜드체인이 필수적인 독감 예방백신 일부를 상온에 노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입찰로 확보한 1259만명분 중 22일 접종을 위해 풀린 500만명분 중 일부 물량으로 추산된다.
질병청은 백신 예방접종을 전면 중단하고, 품질 검증을 거친 후 순차적으로 접종을 재개할 방침이지만 국민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심지어 경쟁업체 신고로 이 같은 정황이 드러났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국가 조달사업에 대한 치열한 경쟁이 국민 생명까지 위협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제기됐다.
김진문 신성약품 대표는 연합뉴스 인터뷰를 통해 “큰 차에서 1t 차량으로 분배해서 옮겨 실을 때 상온에 노출이 있었을 것으로 우려되는 물량은 공급 대상이던 500만명분 중 17만명분 정도”라고 주장 했다.
이번 유통사고는 일부 배송기사가 예방백신을 상온에서 분류·배송하거나 냉장차 문을 열어놓고 작업하는 등 기본적 절차조차 준수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독감 예방백신 유통을 담당한 신성약품은 올해 처음 백신 국가접종 유통을 맡았다. 지난해까지 백신 국가접종 유통을 맡은 업체들을 제치고 해당 기업이 최저가로 조달청 낙찰을 따낸 것이다.
하지만 대규모 백신 유통경험이 없었던 신성약품은 정부조달 낙찰 후 유통을 물류업체들에 재하청 준 것으로 드러났다. 가뜩이나 경험이 부족한 신성약품은 계약에 따라 낙찰 후 불과 나흘 만에 공급을 마쳐야 하는 촉박한 상황이었던 정황도 포착됐다.
조달물량 유통을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한 질병청의 잘못도 분명 존재한다. 경쟁업체의 신고가 없었다면 자칫 ‘불량 백신’이 국민에게 온전히 보급됐을 수도 있고, 부작용까지 초래하는 중대한 사안까지 벌어질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독감 예방백신 유통·관리 부실 사고가 이번에 크게 불거졌지만, 과거에도 엇비슷한 사례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총체적 관리부실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매해 의약품 유통 과정에서 콜드체인 시스템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사례가 적발돼 제재를 받은 사례가 꾸준히 적발되고 있기도 하다.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일일 신규 확진자 수가 다시 100명대에 올라간 상황에서 다음 주 추석 연휴까지 겹쳐 독감과 코로나가 동시에 유행하는 ‘트윈데믹’ 공포까지 불거지고 있다.
정부는 상온에 노출된 시간이 길지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으나, 품질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당분간 혼란이 지속할 전망이다. 검사 기간은 가장 오래 걸리는 무균시험 기간을 고려해 약 2주 걸린다.
질병관리청은 식약처의 품질검사 결과에 따라 어느 정도의 문제가 있는지를 파악하고 폐기 또는 접종 재개 등을 결정할 방침이다. 하지만 의료계는 정부는 독감 백신이 상온에서 노출된 시간이 길지 않은 것으로 파악한다고 밝혔지만, 불안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라고 강조했다.
대한개원의협의회는 성명을 통해 “모든 백신을 다 검사하는 것도 아니고, (표본을 검사한다면) 어떤 판단 기준으로 얼마나 정확히 검사가 될지 모르겠다”며 “정부가 사용해도 좋다는 결과를 내놓고 큰 부작용이 없다 한들 백신의 효과까지 제대로 보장될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강기윤 국민의힘 의원은 “신성약품이 유통한 독감 백신 500만 도즈를 검사해 설령 이상이 없다고 하더라도 어떤 국민이 해당 백신을 맞고 싶겠냐”며 “결과에 상관없이 전량 폐기해야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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