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어머니의 자소서와 코로나19
상태바
[기자수첩] 어머니의 자소서와 코로나19
  • 정두용 기자
  • 승인 2020.09.08 15: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두용 매일일보 산업부 기자
정두용 산업부 기자

[매일일보 정두용 기자] 제목을 적고 한참을 고민했다. 개인적 경험을 지면에 싣는 게 옳을까, 다른 시급한 사안을 다루는 게 나을까. 내게 ‘당신을 듣다, 진실을 말하다’란 언론관을 심어줬던 많은 선배들의 조언도 떠올랐다.

어머니의 이야기가 담겨있기에 문장을 써나가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았다. 힘든 글일 터다. ‘쓰지 않을 이유’가 많았지만, 그래도 적기로 했다. 하지 말아야 할 숱한 이유들보다 더 중요한 단 하나의 가치가 있을 것만 같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할 무렵, 자연스럽게 세계적 실업문제가 부각됐다. 심각성을 표현해주는 다양한 수치들이 등장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4월 실업률 8.4%, 국내 6월 실업률은 1999년 이후 최고 수준인 4.3%(한국은행 자료). 무서운 얘기들도 들린다. “코로나19 우울증으로 인해 수도권 2030 여성을 중심으로 한 자살 관련 데이터가 악화되고 있다.”, “국내 소상공인들이 줄폐업 위기에 닥쳐있다”는 식이다.

나는 기자다. 기사를 쓰며 이런 데이터를 늘 활용해왔다. 숫자는 현상을 말해주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를 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이 숫자에 집중해 정작 중요한 현상들은 놓치기 십상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어머니를 보며 새삼 다시 느꼈다. 서른살이 되서도 어머니의 삶을 통해 여전히 가르침을 받는다.

어머니는 최근 직장을 잃으셨다. 어머니의 잘못도 그렇다고 회사의 잘못도 아닌 해고였다. 탓을 하자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코로나19 때문이다. 위축된 시장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일 터지만, 우리 가족에겐 지대한 삶의 변화가 이뤄졌다. 자연스러운 현상·숫자로 나타났던 사실로 인해 어머니는 많은 생각을 하셨을 것 같다.

어머니는 어린이집 교사로 일하셨다. 정말 최선을 다해 사랑으로 아이들을 대하셨다. 그러나 코로나19는 어린이집이라고 피해가지 않았다. 어머니의 직장이 영유아를 모두 돌보는 곳이기에 더욱 그랬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끊겼고, 원장과 직원들의 고민은 깊어졌다.

어머니는 1965년생이시다. 어린이집 구성원 중 나이가 가장 많으셨다. 아이가 준 만큼 직원도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나이는 좋은 이유가 됐을 터다. 이 역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회사의 잘못이라곤 생각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어머니께 직업의 의미는 특히 남달랐다. 누나와 내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묵묵히 뒷바라지하시고 난 뒤에 얻은 직장이자, 늦깎이 공부의 수고스러움을 견디시고 찾으신 젊은 시절 목표였다. 그래서 10년 정도를 그렇게 즐겁게 일하셨던 모양이다. 그 소중함을 다 알진 못하지만, 지레짐작이 되기에 마음이 아프다.

어머니의 퇴사 소식을 듣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어머니는 내게 자기소개서 첨삭을 부탁하셨다. 자식 된 입장에서 이제 일을 놓고 편하게 있으셨으면 했지만, 글을 읽고 나선 이런 마음을 전달 드리진 못했다. 투박한 문장으로 솔직하게 꿈을 찾으셨던 과정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어머니는 어린이집 교사로 더 일하시고 싶으시다는 마음이 느껴졌다. ‘잔정이 많으신 아버지, 세심한 배려를 몸소 실천하신 어머니’로 시작하는 글엔 “그렇게 엄마가 됐다. 꿈보다 더 소중한 것들이 생겼다”, “자식들이 모두 크니 이제 젊은 날의 꿈을 이루고 싶다고 생각했다”는 문장이 담겨있었다.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든 시기다. 내가 숫자로 설명해왔던 기사들의 현상을 직접 겪고 있는 분들께 이 고백이 작은 위로가 됐으면 한다. 자연스러운 현상을 겪으며 아직 꿈을 포기하지 않으신 어머니처럼 당신도 힘을 냈으면 좋겠다. 곧 어머니의 생신이 다가온다. 어머니의 글을 고치며 표현치 못했던 응원의 마음을 이번 기회에 전달하고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