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정기 임금인상 없애는 토요타… “기아차 추가 임금만 500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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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정기 임금인상 없애는 토요타… “기아차 추가 임금만 500억”
  • 성희헌 기자
  • 승인 2020.08.31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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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헌 산업부 기자
성희헌 산업부 기자

[매일일보 성희헌 기자] 일본 토요타가 연공서열식 임금인상을 없애고 성과 연봉제를 도입한다. 매년 일률적으로 인상됐던 현재 방식에서 벗어나 평가 결과에 따라 승급액을 정하는 것이다. 내년 4월부터 시행하는 것이 목표다. 

토요타 노조는 작년 9월 기본급을 개인 평가에 따라 5단계로 나눠 지급하는 제도를 받아들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일본 제조업의 전통적인 임금제도를 개편한다고 노조가 나서 ‘철밥통’을 깬 것이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의 공유다. 자동차 산업이 대격변기에 돌입한 만큼 기업 경쟁력을 높이지 않으면 도태되고 만다는 위기의식을 함께 한 것이다.

토요타는 일본 최대 노조원을 보유한 대표 기업이다. 토요타의 임금제도 개편으로 또 다른 일본 기업에 비슷한 움직임이 확산될 수도 있다. 지급되는 임금 총액이 이전과 같더라도 차등 배분을 통해 직원 성과는 올라가 기업 경쟁력 확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게다가 토요타는 50년 이상 단 한 번도 파업을 하지 않았다. 이러한 노조의 뒷받침 등 토요타는 올해 상반기 글로벌 판매량 1위를 기록했다.

반면 국내 완성차 업체는 매년 임금협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로 인한 ‘파업카드’도 ‘연례행사’로 자리잡았다. 게다가 최근 10년간 끌어온 기아자동차 노사 통상임금 논쟁이 노조 승소로 마무리됐다. 통상임금은 법정 수당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기업에서는 추가로 수당을 내야한다. 대법원의 확정 판결에 따라 기아차가 지급해야 할 돈은 500억원대로 추산된다.

기아차 생산직 노동자들은 2011년 연 700%에 달하는 정기상여금과 각종 수당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수당·퇴직금 등으로 정해야 한다며 소송을 낸 바 있다. 당초 원고로 참여한 노동자가 2만7000여명, 청구액은 1조원에 달했다. 법원은 노조의 추가 수당 요구가 회사의 경영에 어려움을 초래해 ‘신의 성실의 원칙(신의칙)’에 위반된다는 회사 측 주장을 기각했다. 기아차 노사는 2심 판결 직후인 작년 3월 통상임금 관련 합의를 했다. 그 후 상당수 원고들이 소를 취하했다. 원고 중 약 3000명은 합의하지 않고 소송을 진행, 이번 판결을 받았다.

이에 경제단체들은 기업 경영 불확실성이 높아질 것을 우려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노사가 합의한 임금체계를 성실하게 준수한 기업에 일방적으로 막대한 규모의 추가적인 시간외수당을 부담하게 하는 것으로 경영계는 심히 유감스럽게 여긴다”고 밝혔다. 이어 경총은 “우리나라 자동차 기업들은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이 12% 이상으로, 연구개발(R&D)이나 마케팅 경쟁력이 악화하고 있는데 이번 판결로 인건비 부담이 가중되고 결과적으로 중대한 경영상 위기를 가져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실장은 “신의칙을 적용할 수 있는 기업경영 어려움에 관해 구체적인 판단기준이 제시되지 않아 산업계 혼란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기아차와 유사한 통상임금 소송을 진행 중인 국내 기업에도 후폭풍이 관측된다. 뿌리깊은 연공서열 임금제도를 바꾼다는 토요타발(發) 바람과는 사뭇 다르다. “더 달라”는 요구에서 한발 물러나 양보하고 합심하는 훈풍을 기대하긴 어려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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