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정 큐레이터의 #위드아트] 영생의 바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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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정 큐레이터의 #위드아트] 영생의 바나나
  • 매일일보
  • 승인 2020.08.13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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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에이전시 더 트리니티 박소정 대표
아트에이전시 더 트리니티 박소정 대표

아트바젤(스위스), 아트바젤 홍콩, 아트바젤 마이애미로 구성된 세계 최대 아트페어이자 미술품 마켓 ‘아트바젤’이 올해 모두 취소되었다. 매년 미술계의 뜨거운 이슈를 생산했던 행사들이 취소되니 미술계 종사자로서는 단순히 아쉽다는 차원을 넘어 참혹스러운 상황이다. 그래선지 자연스럽게 작년 아트 바젤 마이애미에서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 떠오른다.

작품명 ‘코미디언’이다. 전시 벽에 바나나 하나가 사선으로 붙여진 박스테이프 하나에 의지해 덜렁 붙어있다. 판매된 가격이 12만 달러, 한화로 약 1억4000만 원. 이에 마이애미의 저임금 청소 노동자들은 바나나가 자신들보다 더 가치 있다는 박탈감으로 빈곤 해결을 촉구하는 시위가 열렸고, 현장에서 누군가 바나나를 먹어버린 사건까지 발생했다. 이 바나나 소동은 하루 종일 전 세계의 화제가 됐을 정도다. 작품 ‘코미디언’을 제작한 작가는 이탈리아의 조각가이자 행위예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이다. ‘코미디언’을 먹어버린 사람은 뉴욕에서 활동하는 행위예술가 데이비드 다투나(David Datuna)였다. 

카텔란은 종교, 정치, 사회, 미술계 등 기성 체제를 풍자하는 역설적인 유머로 현대미술계에 큰 반향을 가져온 작가이다. 독일의 독재자 히틀러를 소년의 크기로 만들어 무릎을 꿇게 한 모습을 표현한 작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으로 깔아 뭉개놓은 듯한 작품 등 영화로 치자면 블랙 코메디 장르에 가깝다. 18K금으로 만든 사치스러운 변기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전시장 밖 화장실에 설치를 한 ‘아메리카’는 미국의 경제 불균형과 부의 세습에 영감을 받아 제작한 작품으로 계속 회자되고 있다. 

‘코미디언’의 바나나의 경우 세계 무역을 상징하는데, 금새 썩어버리는 바나나 자체가 작품이 아닌 작가의 명성에 딸려오는 정품 인증서를 구매하는 것이 핵심이다. 증서에는 예술품의 개념과 이를 언제든 재현할 수 있는 구체적 설치 방식이 기록되어있다. 영생의 바나나가 1억4000만 원이라면 이제는 제법 말이 되지 않나? 이후 버거킹, 펩시는 ‘코미디언’을 패러디한 광고를 내보냈다. 이처럼 카텔란의 작품은 사람들 의식에 침투하기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또한 작품을 통해 다양한 견해와 도전을 하도록 부추긴다. 

카텔란은 트럭운전사인 아버지와 청소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생계를 위해 일만하느라 28세가 되도록 미술관 문턱을 밟아본 적이 없었다. “귀하게 태어나는 것보다는 고귀하게 기억되는 것이 더 좋다”는 영국의 문학 평론가 존 러스킨의 말이 어울리는 작가다. 

아트바젤은 모두 취소됐지만 부산국제화랑아트페어 BAMA, 한국국제아트페어 KIAF 등 국내 아트페어는 다행히 대체적으로 예정된 일정을 소화하려는 분위기다. K-방역의 덕택이다. 카텔란의 바나나와 같은 뜨거운 이슈도 좋겠지만 시기가 시기 인만큼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훈훈한 감동을 기대해 본다. 무엇보다 방역기준을 철저히 준수해 안전한 페어를 준비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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