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풀어도 못 푸는 돈맥경화…유동성 함정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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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풀어도 못 푸는 돈맥경화…유동성 함정 우려
  • 이광표 기자
  • 승인 2020.08.13 14: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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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조원 넘는 시중통화량...예금·주식·부동산 쏠림 심화
정부 잇단 통화·재정정책 무용지물...“금융불균형만 키워“ 
시중에 유동성이 역대 최대치로 불어났지만 생산적 투자로 이어지지 않는 돈맥경화 현상이 짙어지고 있다. 사진은 조폐공사 화폐본부 직원이 5만원권을 검수중인 모습. 사진=연합뉴스
시중에 유동성이 역대 최대치로 불어났지만 생산적 투자로 이어지지 않는 돈맥경화 현상이 짙어지고 있다. 사진은 조폐공사 화폐본부 직원이 5만원권을 검수중인 모습. 사진=연합뉴스


[매일일보 이광표 기자] '돈맥경화'다. 무려 3000조원이 넘는 돈이 시중에 풀렸는데 제대로 흐르지 못하고 있다. 막대한 돈의 흐름은 오로지 예금을 비롯해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시장으로 쏠리고 있는 중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인한 경제충격을 완화하려 정부가 대규모 유동성을 공급했는데 기대햇던 경제 선순환은 이뤄지지 않는다. 

13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상반기에만 시중 통화량이 역대 최대인 169조원이나 불어났다. 6월 말 기준 시중에 풀린 돈은 총 3077조원으로 역시 역대 최고 기록을 다시 썻다.

그러나 넘쳐나는 유동성은 소비와 투자 등 실물경제로 투입되지 않는 모습이다. 경기 회복이 더뎌지며 가계와 기업들이 자금 확보에 열을 올리며 상당액이 은행 수신으로 흘러가고 있다.

◇자금 쌓는 가계·기업...은행수신 최대로

올해 6월말 기준 은행 수신은 1858조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108조7000억원이나 올랐다. 상반기(1~6월) 기준 은행 수신 사상 최대 증가폭이다.

은행 수신은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시작한 2월에 35조9000억원 증가했고, 3월에 33조1000억원, 5월에 33조4000억원이 늘었다. 감염자 수가 줄어든 지난달에는 18조6000억원 증가했다.

위기 상황에서 가계나 기업이 대출을 크게 늘렸지만, 소비나 투자에 나서기 보단 저축을 늘려 은행 수신이 급속도로 불어난 것으로 보인다.
 
올 상반기 가계와 기업이 은행에서 빌린 대출은 118조3000억원 증가했다. 기업·자영업자 대출은 총 77조7000억원, 가계대출은 40조6000억원 확대된 것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정기예금의 경우 오히려 2조3000억원 감소했다.

특히 은행 수신 108조7000억원 중 107조6000억원이 수시입출식 예금인 것으로 나타나 은행 수신의 가파른 증가와 대출 증가의 밀접한 관련성을 보여준다.

실제 한은이 발표한 ‘6월 중 통화 및 유동성’ 통계에 따르면 수시입출식 저축성예금이 6월 한달간 14조4000억원으로 가장 크게 늘었다. 분기말 재무비율 관리와 결제성자금 확보 등으로 기업부문을 중심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금이 필요한 상황에 대비해 여유자금을 쌓아놓은 기업과 가계가 당장 쓸 일이 없어 예금으로 쌓아두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은 관계자는 “급격히 늘어난 수신과 대출이 상호 연관성이 있다는 시각이 많다”며 “가계나 기업이나 위기 상황에서 대출을 받아 현금을 확보해 놓고 저축을 늘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자산시장만 요동...예탁금 50조 육박 

남은 자금은 자산시장으로 쏠리는 중이다. 

우선 증시에 유동성 광풍이 몰아쳤다. 코로나19로 촉발된 초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이 자본시장에 도는 돈의 방향을 바꾸고, 증시 주체를 개인으로 바꾸고 있다. 

13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개인들이 주식투자를 위해 넣어두는 예탁금은 작년 말 27조3932억원에서 지난 7일 기준 49조2196억원으로 2배 가까이 치솟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10조~20조원대였던 예탁금 규모는 2020년 코로나19를 기점으로 40조원을 넘어섰고, 한때 50조원도 돌파했다. 6월 26일과 8월 3일 기록한 50조원대 예탁금은 1990년 주식시장이 개방된 이후 가장 많은 금액이다.

유동성이 풍부한 상황은 부동산 시장으로도 향한다.

한은의 '2020년 하반기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부동산금융은 1년 사이 168조3000억원 늘어난 2105조3000억원으로 사상 처음으로 2100조 시대를 열었다. 부동산금융은 금융회사의 부동산 대출·보증, 기업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차입금, 부동산 펀드·자산유동화증권(ABS), 주택저당증권(MBS), 리츠(부동산투자회사) 등을 합친 것을 말한다.

불어난 부동산금융은 이미 국민총생산(GDP) 규모를 뛰어넘었다. 명목 GDP에서 부동산금융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년 상승해 2018년 101%로 처음 100%를 돌파한데 이어 올해 3월 말 기준 109.7%까지 뛰었다. 이미 지난해 토지자산 가치는 GDP의 4.6배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막대한 유동성 공급이 당초 의도와 달리 자산시장의 버블만 키우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 4일 공개된 7월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일부 금통위원은 완화적 통화 정책에 따른 자산 가격의 거품을 우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금통위원은 “최근 주택가격이 빠르게 상승하고 가계대출 증가세도 다시 확대되는 등 금융불균형 우려가 증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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