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선 작가, 소외된 존재 7편의 ‘고요한 인생’ 소설집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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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선 작가, 소외된 존재 7편의 ‘고요한 인생’ 소설집 출간
  • 강세근 기자
  • 승인 2020.08.09 15: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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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같은 관계 소멸되는 시간과 공간 아이를 아이답지 못하게…
‘고요한 인생’ 소설집 표지 (제공=저자 신중선)
‘고요한 인생’ 소설집 표지 (제공=저자 신중선)

[매일일보 강세근 기자] ‘고요한 인생’은 소외된 존재들에 대한 예리한 시선이 돋보이는 신중선 작가의 소설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된 존재들을 통해 우리 안에 내재된 인권감수성을 일깨운다. ‘고요한 인생’, ‘아들’, ‘언니의 봄’, ‘언더독’, ‘낮술’, ‘아이 러브 유’, ‘그 집 앞’까지 7편의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보잘 것 없는 모양새로 거리를 떠돌며 실패와 절망의 서사들이 가족의 이름 아래에서 먼지처럼 피어오른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선정하는 ‘2018년도 2차 문학나눔 도서보급사업’에 선정된 신중선 작가의 전작 ‘여자라서 행복하다는 거짓말’에서도 ‘삶의 무게와 침묵’, ‘고요한 잔혹극’ 등의 열쇠 말로 해설된 바 있다. 신작 ‘고요한 인생’에서도 그런 관점은 일관되게 유지된다. 

‘고요한 인생’은 가전제품 광고 속에서는 세련된 장식의 깔끔한 집 안에서 따뜻한 햇살 속에 엄마, 아빠, 아들, 딸이 최첨단 제품의 기능을 마음껏 즐기며 화목하게 웃는다.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일 것이라고 기대되는 장면들이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가족이 그만한 물리적 환경 속에서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가부장제의 폐해가 이제야 조금씩 구체적인 언어로 발화되면서 세상에 겨우 얕은 금 한 줄 균열을 내고 있는 시절이다. 우리 인생에서 대부분의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지만 그 시공간은 위안, 편안한 휴식 등의 말과 얼마나, 어떻게 연관될 수 있을까.

‘고요한 인생’ 속 아이들은 아이여도 아이 같지 않다.  ‘아들’의 여자아이는 아이답지 않은 ‘짐짓 어른스런 말투’로 아들을 대하고, ‘고요한 인생’의 수은은 노인의 뒷모습을 하고 있다. 가난은 아이에게 아이다움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적어도 작가의 시선이 머문 가난의 모습은 그렇다. 가난 탓이라기보다, 이들이 부모에게 가질 수밖에 없었던 죄책감이 더 깊은 곳에서 작동하는 것이다. 

‘아들’은 한 번 실수로 엄마를 죽음에 이르게 했고, ‘고요한 인생’의 아이는 부모가 원치 않았던 아이였다. 그리도 험한 날씨였던 날 태어났고, 그때 아버지는 노름에 빠져 사느라 집에 있지도 않았고, 그래서 엄마는 아이가 태어나던 날 무렵만 되면 몸이 붓고 아파온다. 희망과 기대 속에서 맛본 좌절이 아니라, 이들에게는 아예 희망 자체도 부재했다. 

‘언니의 봄’의 난희언니는 어느 날 갑자기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 이쪽 세상에서 저쪽 세상으로’ 이사를 갔다. 난희언니에 대한 식구들의 부채의식은 감정을 필요 이상으로 과장하게도 했는데, 화자인 셋째 딸도 난희언니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사건당일로부터 반년 정도 전쯤’이었으니 이들 가족에게도 ‘함께함’의 시공간은 거의 부재했다. 

‘고요한 인생’에서 시간과 공간은 대체로 무의미하다. ‘함께함’이 소거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물들에게 삶의 소중함을 느끼게 할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다. 뽀얀 먼지 속에서 독립적인 개체들이 각자자신의 고뇌의 시공간을 채울 뿐이었고, 그 속에서 관계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책임을 지지 않고, 남겨진 아이들은 아이다운 시간을 얻지 못한 채 헤어짐을 받아들이며 시간을 다시 보내고 있다.

‘고요한 인생’은 유독 특정 모티프 하나가 강렬하게 인상을 만들어내는 특징이 있다. ‘언더독’은 제목 자체가 ‘약자’를 뜻하는 용어로 존중받지 못한 삶 탓에 ‘타인의 눈치를 살피며 사는 것이 습관이 된 지 오래인’ 갑석의 자격지심이 ‘언더독’ 상태에 머무르게 한다. 

‘낮술’의 오징어 다리나 ‘그 집 앞’의 전화기는 타인의 신호를 잡기 위해 뻗어내는 더듬이와도 같다. 전직 피디, 상무, 부장들이 여전히 그 직책으로 서로를 부르며 일 년에 한 번 겨우 만나 낮술을 하면서 오징어 다리가 여덟 개인지 열 개인지 하는 질문이 제시됐다.

 ‘볼품없이 얄따란 두 다리와 듬성듬성 나 있는 털들’ 따위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던 권 부장은 유독 길게 뻗은 두 개의 오징어 다리가 더듬이 팔이라는 말을 듣고 집에 돌아와 먹이를 잡을 때나 사랑을 나눌 때 사용한다는 그 길다란 오징어 팔을 흔들며 암컷 오징어나 껴안는 환상에 빠진다. 

‘그 집 앞’의 전화기와 벨소리는 타인을 향한 남자의 관심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이나, 결정적으로 홍은동 이층집 여자가 전화를 해왔을 때 남자는 늘 그랬듯 환청이라 생각하고 무시했다. ‘아이 러브 유’에서 인형 배를 누르면 튀어나오는 ‘아이 러브 유’ 하는 청명한 목소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가닿지 못한 채 허공에 흩어지는 마음이다.

‘고요한 인생’은 작품 속 인물들에겐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은 소거되어 있고, 절망에 기반 한 환상 속으로 도피하는 일조차 여의치 않다. 희망을 함부로 말하지 않고 현실을 포장하지도 않는다. 죽음 혹은 사라짐은 먼지와도 같이 인물들의 삶을 감싼다. 

평범한 일상인 듯 자연스러운 도입부를 지나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구성이 흡입력 있어 술술 읽히는 맛이 있고 ‘언더독 효과’처럼 가망 없어 보이는 약자들에 대한 연민 가득한 시선이 느껴진다. 우리는 ‘고요한 인생’ 통해 최소한 먼지 같은 관계 속에 아파하는 인물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만이라도 유지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신중선 소설가는 경남 거창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했다.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신문방송학과에서 출판잡지를 전공했다. 1987년 ‘떠다니는 꿈’으로 ‘현대문학’ 추천을 받고 1993년 ‘어느 보일러공의 특별한 하루’로 ‘자유문학’ 신인상을 받았으며, 201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학나눔’ 우수문학으로 소설집 ‘여자라서 행복하다는 거짓말’이 선정됐다.

장편소설 ‘하드록 카페’, ‘비밀의 화원’, ‘돈워리 마미’, ‘네가 누구인지 말해’가 있고, 소설집 ‘환영 혹은 몬스터’, ‘누나는 봄이면 이사를 간다’, ‘여자라서 행복하다는 거짓말’과 ‘고요한 인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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