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현장에서] 국민들 ‘설득’에 실패한 검찰, 이재용 불기소 수용해야
상태바
[산업현장에서] 국민들 ‘설득’에 실패한 검찰, 이재용 불기소 수용해야
  • 이상래 기자
  • 승인 2020.08.05 11: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6월 법원에서 구속영장실질 심사를 마치고 나오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연합뉴스

[매일일보 이상래 기자] 지난 3일 윤석열 검찰총장의 신임검사 신고식 발언이 화제입니다. ‘진짜 민주주의’를 꺼낸 윤 총장을 두고 ‘칼을 뽑았다’는 평가마저 나옵니다.

‘진짜 민주주의’ 외에 윤 총장이 강조한 단어가 또 있습니다. 바로 ‘설득’입니다. 윤 총장은 신임 검사들에게 ‘설득’이라는 단어를 7차례나 반복하며 강조했습니다. 다음은 윤 총장의 발언 일부입니다.

“검사가 하는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설득’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동료와 상급자에게 ‘설득’하여 검찰 조직의 의사가 되게 하고, 법원을 ‘설득’하여 국가의 의사가 되게 하며, 그 과정에서 수사대상자와 국민을 ‘설득’하여 공감과 보편적 정당성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윤 총장이 검사로서 ‘설득’의 과정을 중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윤 총장이 과거 특수통 일선 검사로서 이름을 날리던 시절 집필에 참여한 수사실무 교본 ‘검찰수사 실무전범’을 보면 “특별수사는 끊임없는 설득의 과정, 커뮤니케이션의 과정”이라고 나옵니다. 윤 총장은 이 교본에서 “검사는 (중략) 법원을 납득시켜 자신의 의사가 검찰 조직의 의사를 넘어서 보편적 의사, 국가 의사가 되도록 하고, 언론을 통해 국민을 납득시킴으로써 자신의 의사가 국민의 의사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적었습니다.

‘설득’의 마음가짐은 검찰 개혁과도 밀접합니다. 검찰이 개혁의 일환으로 스스로 만든 제도인 수사심의위원회가 대표적입니다. 수사심의위원회 운영지침 제1조 목적에서는 ‘검찰수사의 절차 및 결과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제고하기 위하여 설치하는 검찰수사심의위원회의 운영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적혀있습니다.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을 통해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높이고자 만든 것이 심의위인 것입니다.

심의위는 이러한 취지에 부합하도록 철저히 검찰 외부의 ‘국민’들로 구성됩니다. 먼저 심의위에서 안건이 논의되려면 먼저 시민위원회에서 안건 상정 여부를 논의합니다. 이 시민위원회는 시민위원 60명 중 성(性), 연령, 거주지 등을 고려한 무작위 추첨으로 선발된 15명으로 구성됩니다.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건전한 상식을 가진 일반 시민들이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 시민위원회를 통과하면 심의위에서 안건을 다룹니다. 심의위는 시민위원회와 조금 다릅니다. 검찰이 가진 법조계, 학계, 언론계, 시민단체, 문화·예술계 등 각 분야 전문가 150~250명으로 구성된 위원들 중에서 15명이 선발됩니다. 이번에는 다양한 분야의 외부 전문가들이 따져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 검찰이 이상합니다. 시민위원회와 심의위를 모두 거쳐 불기소·수사중단 권고를 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건에 대해 수용하지 않고 시간을 끌고 있는 것입니다. 시민위원회와 심의위에 참여한 국민들은 검찰이 주장하는 이 부회장 혐의에 대해 납득하지 못하고 불기소·수사중단 권고를 내렸습니다. 검찰이 국민들을 ‘설득’하지 못한 것입니다. 앞서 검찰이 법원을 설득하지 못해 이 부회장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당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동안 이 부회장 혐의에 대한 증거가 차고 넘친다고 주장한 검찰입니다. 그런데 법원(영장기각), 시민위원회(일반시민), 심의위(각계 전문가) 모두를 설득하지 못하고, 오히려 강력한 권고인 ‘수사중단·불기소’가 나왔으니 특수부 출신 검사들마저 놀랬다는 후문입니다. 검찰 외부에서는 “정말 증거가 없는 거 아니냐”는 말까지 나옵니다.

심의위가 불기소 권고를 내린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 아직도 검찰 주위에서는 수사팀이 이재용 기소를 강행할 것이란 얘기들이 나옵니다. 국민을 설득하지 못했지만, 검찰이 ‘1년 8개월’ 장기간 수사를 했으니 기소해야 한다는 논리로 말입니다.

최근 검찰이 신성철 한국과학기술원 총장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고 합니다. 정부가 신 총장을 국가 연구비 횡령 혐의로 고발한 지 1년 8개월이 됐으니 ‘장시간 수사’로 볼 수 있습니다. 과학계에서는 신 총장의 되돌릴 수 없는 잃어버린 ‘1년 8개월’을 두고 안타까운 시선이 적지 않습니다.

검찰은 지금이라도 이 부회장 불기소 권고를 받아야 합니다. ‘만시지탄’이나 이제라도 국민의 의사에 따라 검찰이 심의위 권고를 따르는 것이 검찰 개혁에 부합할 것입니다. “검사의 업무는 끊임없는 ‘설득’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는 윤 총장의 당부가 맴돕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