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상처받은 치유자, 빈센트 고흐의 불꽃같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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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상처받은 치유자, 빈센트 고흐의 불꽃같은 삶
  • 김동환 기자
  • 승인 2020.08.03 16: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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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열린사이버대 특임교수 임창덕
한국열린사이버대 특임교수 임창덕​
한국열린사이버대 특임교수 임창덕​

[매일일보]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화가 중에 한 명, 한 점에 수천억 원을 호가하는 그림을 그린 화가, 많은 애호가들이 그의 삶의 흔적을 따라 순례길에 오를 정도로 좋아하는 화가, 그중 한 명이 빈센트 반 고흐(이하 고흐)다.

그러나 그의 삶은 지금 그려지는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비참한 상황에서 그림에 생명을 걸고 예술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살아갈 때 사람들은 그를 차갑게 대했고, 차가운 땅속에 묻혀있는 동안 그에 대한 관심이 이렇게 뜨거울 수 있을까.

아이러니한 삶을 살다간 고흐의 사후 130년 주년을 맞아 그의 삶을 따라가 본다.

[자화상, 1887]
[자화상, 1887]

그의 전업 화가로서 기간은 채 10년 정도다. 그 기간 900점에 가까운 그림과 1,100여 점의 스케치를 남겼다.

그의 초기 대표작‘감자 먹는 사람들(1885)’을 그린 나이가 32세였음을 감안하면 그의 사망한 나이 37세까지 불과 5여 연간 그림에 영혼을 바치며, 예술가로서의 불꽃같은 삶을 산 셈이다. 13살 때 미술 수업 중에 미술수업을 듣고, 외사촌이자 화가였던 안톤 모베(Anton Mauve)에게 지도를 받기는 했지만 독학으로 그림을 시작했고 초창기에는 색채의 활용에는 미숙했다.

 고흐는 개신교 목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목사가 되기를 희망했다. 종교에 환멸을 느꼈다는 얘기도 있지만, 목사 국가시험에 2번 떨어지고 광신적인 종교 활동에 아버지는 목사가 되는 것을 말리기에 이른다. 벨기에 보리나주 탄광 지역에서의 전도사 생활도 전도사로서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는 상황이 되자 동생 테오 반 고흐(이하 테오)의 설득 등으로 결국 종교의 순교자로 그림이라는 예술을 택하게 된다. 예술은 그가 숨 쉴 수 있는 마지막 탈출구였던 셈이다.

고흐 집안에는 유독 정신 질환자가 많았다고 한다.

고흐의 두 삼촌은 정신질환 진단을 받은 바 있으며, 어머니는 만성 우울증. 고흐 여동생은 정신적 문제로 말년을 요양원에서 보냈다. 또 다른 여동생 빈센트는 10년 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감자심기 , 1884]
[감자심기 , 1884]

고흐는 초창기 농민의 현실을 그리는 화가의 꿈을 꾸며, 밀레를 롤 모델 삼아 그림을 따라 그리곤 했다. 그의 초기 대표작이 위에서 말한 그림, 감자 먹는 사람들이다. 이 그림은 56회 습작이라는 수고 이후 탄생한 작품이다. 이 그림은 자체 고흐가 그림에 빛을 깨닫고 그린 그림이라는 의미가 있으며, 그의 여동생에게“자신의 그림 중에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남을 거야”라고 한 것처럼 고흐 입장에서는 최고의 작품이었다.

그러나 파리에서 화상을 하고 있는 동생 테오에게 보내졌고, 동생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로부터 혹평을 받는다. 당시 파리는 인상주의 영향으로 밝은 화풍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이후 인물에 부여했던 것과 같은 감정을 풍경에 그려 넣으며, 풍경을 그릴 때 그 속에 사람의 흔적을 남겼다.

이후 그의 그림도 일본 풍속화인 우키요에와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아 밝아지고 색에서 생명을 추구해야 한다고 하면서 그전까지 표현 수단이었던 색을 전면에 내세워 생명을 불어넣기 시작한다.

1888년 2월 고흐는 화가의 공동체를 꿈꾸며 색과 빛을 찾아 떠난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아를(Arles)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싣는다.

그 유명한 노란 집에서 고갱과의 63일간의 공동생활이 시작된다. 고흐는 사실주의적인 성향이 커서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림을 그리고 인간의 내면 또는 대상의 감성을 표현하는 것에 주력을 했다면, 고갱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상상 속의 내용을 선순위로 해서 그림을 표현하는 것을 선호했다. 그림에 대한 가치의 차이로 다투는 경우가 많았다. 그 결과 고흐 자신의 귀를 자르는 사건이 발생한다.

[노란 집, 1888]
[노란 집, 1888]

아를 노란 집에서 고갱을 기다리며 그렸던 해바라기, 재정적이고 정신적인 후원에 감사해하던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아를의 붉은 포도밭’,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등이 이때 그려졌다. 특히 고흐 생전에 유일하게 팔린 단 하나의 작품으로 알려진 아를의 붉은 포도밭은 고흐가 아를에서 만난 친구, 외젠 보쉬(Eugene Boch)의 부탁으로 고흐 사망 4개월 전인 1890년 초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20인 그룹이라는 화가들의 정기 전시회에 출품되었고 벨기에 화가인 그의 누나 안나 보쉬(Anna Boch)가 구입한 것이었다.

[아를의 붉은 포도밭, 1888]
[아를의 붉은 포도밭, 1888]
[해바라기, 1888]
[해바라기, 1888]

고흐는 그림이 팔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바꿀 수는 없지만 언젠가 그림이 물감의 값어치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볼 날이 올 것이라며 자신을 위로하곤 했다. 동생 테오의 결혼 소식과 고갱이 떠난다는 소식을 접한 당일, 귀를 자르는 사건이 발생했고, 주민들의 민원이 일자 자발적으로 생레미 생폴 정신요양원에 입원하여 1년여 년을 보낸다.

사람들은 고흐를 신들린 듯 그림을 그리며 불꽃처럼 삶을 태웠다고 하고, 미치광이 천재화가, 정신적인 괴로움 속에서도 예술의 혼을 불태웠던 상처 입은 치유자라 부르기도 한다.

우리가 잘 아는 그림은 대부분 그의 마지막 2년에 집중되어 있다.

위키피디아(wikipedia)의 자료에 의하면 1888년 2월부터 15개월간, 아를에 머무는 동안 187점을 그렸고, 약 1년간의 정신병원에서도‘별이 흐르는 밤(1889)’등 142점의 많은 그림을 그린다. 삶의 마지막 장소,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Sur-Oise)의 70여 일 동안 77점의 그림을 그렸다. 그의 생애 그린 총 868점의 그림 중 406점이 마지막 2년에 집중되어 있다. 관리되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더 많았을 감안하면 이보다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언젠가는 그림이 생활비와 물감 값보다 더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아줄 날이 올 것이라 믿으며, 진정한 화가는 캔버스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캔버스가 화가를 두려워한다고 했던 그는 진정한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았던 화가였다.

1890년 7월 29일 고흐는 권총 총상으로 사망한다. 따라서 올해가 고흐 사망 130주년이 되는 해다.

그동안 답하지 않던 세상이 고흐에게 답장을 보내기 시작할 무렵이라 안타까울 따름이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 1889]
[까마귀가 나는 밀밭, 1889]

당시 자살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권총이 70여 년 만에 발견되어 경매에 나왔고, 지난해 2억 원 이상에 낙찰되기도 했다. 그의 사망은 자살이냐 타살 등 그를 둘러싼 미스터리는 아직도 그 당시에 머물고 있다. 귀를 자르기 전 관람했던 투우사의 소의 귀를 자르는 의식의 영향을 받았다는 말도 있다.

최근 그의 마지막 그림으로 알려진‘나무뿌리들(Tree Roots, 1890)’라는 제목의 그림을 그린 장소가 발견되어 의미를 더하고 있다. 농부와 노동자를 자기 자신 보다 더 챙기던 그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예술은 없다는 생각한 자존심 강한 사람이었다.

[나무뿌리, 1890]
[나무뿌리, 1890]

동생 테오는 고흐가 사망하고 6개월 뒤 사망한다. 1914년 다른 곳에 묻혀 있다가 24년 만에 프랑스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있는 형, 고흐의 무덤 바로 옆으로 이장되면서 재회하게 된다.

동생 테오만큼 금전적으로나 마음으로 고흐를 지지해 주던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는 형을‘가슴이 따뜻한 남자’, 위대한 화가로서 존경했다. 아들의 이름을 형의 이름처럼 빈센트 반 고흐라 지었다. 그런 그였지만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가정을 이끌면서 예전과 같이 고흐를 지원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형의 자살이 본인의 잘못인 양 죄책감에 시달렸던 모양이다.

1890년 7월 29일, 인생은 고통이라던 고흐는 동생, 테오의 품에 안긴 채,“이 모든 것이 끝났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남기고 사망한다. 고흐가 태어난 네덜란드 준데르트(Zundert) 반 고흐 광장에는 형제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 동상 중심에는 구멍이 네모나게 뚫려있다. 소울 메이트로, 정신적 후원자로서 그동안 동생 테오의 타들어갔던 간 마음을 표현하는 것 같아서 가슴이 짠하면서도 안쓰럽다.

[별이 빛나는 밤, 1889]
[별이 빛나는 밤, 1889]

올해는 별을 꿈꾸며 자신의 꿈을 그린 화가 고흐. 그의 사망 130주년 되는 해다.

별을 잉태하려면 혼돈을 품어야 한다는 니체의 말처럼 삶과 예술을 품고 고뇌로 가득 찬 상황에서도 불꽃같이 살다간 한 화가의 생을 돌아봤다.

냉혹한 날씨는 결국 끝나게 되어 있다며 자신을 위로하던 화가, 별을 꿈꾸며 자기의 꿈을 그린 위대한 화가의 37년 짧은 인생을 돌아보면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결정할 사람은 세상에서 자신밖에 없다는 생각과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진리를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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