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특허권 보호에 있어서 속지주의와 그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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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특허권 보호에 있어서 속지주의와 그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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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7.29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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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심특허법률사무소 유성원 대표변리사
지심특허법률사무소 유성원 대표변리사

코로나 19가 지역사회에 침투해 빠르게 확산되는 시기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진단키트이다. 대량의 감염 확진자들이 증가할 때 빠르고 정확하게 코로나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진단키트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코로나 전염 초기 단계에서 바로 이 진단키트의 부족 사태를 겪었다.

우리나라는 각 국가에서 환자들이 급속도를 증가하는 시기에 코로나 진단키트를 수출하는 국가로 부상했다. 특히, 의료제품 중소기업 기업 N사가 이 수출물량을 감당했다. 진단키트의 생명은 빠르게 진단할 수 있으면서도, 진단의 오류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어떻게 이 기업은 빠르고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질 수 있었을까.

현재, 바이러스를 진단하는 가장 손쉽고 간단한 방법은 비강 내에 검체 체취용 면봉을 깊숙하게 넣어서 체액 샘플을 채취하는 방식이다. 면봉 끝에는 체액이 적셔질 수 있도록 섬유 성분(보통 rayon이 사용됨)의 팁이 형성되어 있다. 그런데, 기존의 일반 섬유를 사용한 면봉의 경우, 면봉 팁 섬유에 체액이 갇혀 버려 적셔있는 샘플의 40% 미만의 양만(실제로 10% 전후) 사용할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면봉 팁의 구조를 완전히 바꾼 제품을 개발한 회사가 있다. 바로 이탈리아의 C사인데, 면봉팁에 나일론 섬유를 사용해 나일론 섬유들이 마치 고슴도치 털처럼 표면에 수직으로 일어나 있도록 제작해 샘플 체액이 면봉 팁 섬유 내에 갇혀버리지 않도록 한 것이다. 그래서, C사 제품의 경우 거의 90%의 체액샘플이 검사를 위해 회수되어 사용될 수 있다. 이는 검사의 정확도를 매우 높일 수 있게 된다.

이 회사는 기술을 2004년경에 개발해, 자국에 출원하였을 뿐 아니라, 국제특허출원 제도인 PCT 출원을 이용해 다 개국에 출원했다. 한편, PCT 출원의 경우, 해외 여러 국가에서의 출원일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이기 때문에, 실제로 각 국가에서 특허권을 정식으로 획득하기 위해서는, 해당 국가의 특허청에 그 국가의 언어로 작성된 특허신청 서류를 다시 제출하는 국내단계진입이라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국내단계진입은 최초의 특허출원일로부터 30개월 이내에 해야 하는데, 각 국가 별 특허대리인을 선임해야 하고, 특허출원 서류에 대한 번역도 해야 하는 등 상당한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특허 제품의 시장성과 사업 전략에 따라서 국내단계진입을 하는 국가를 신중하게 선택하게 된다.

이탈리아의 C사는 면봉 특허에 대해 미국, 유럽, 일본, 중국, 캐나다, 호주 등의 국가에 국내 단계 진입을 했지만, 우리나라에는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아마도 주요 진출 해외 시장에 우리나라가 포함되지 않았거나, 특허 획득을 위한 비용 대비 시장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

속지주의의 원칙 상, 특허권의 효력은 특허를 획득한 국가 내에서만 효력이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국내단계진입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회사는 우리나라에서 특허보호를 받을 수 없고, C사의 면봉 기술을 우리나라 기업이 사용해 제품을 제조, 생산, 판매, 수출 등을 하더라도 특허권 침해를 주장할 수 없다. 더 나아가 이 기술은 2004년에 국제 공개되었기 때문에 현재는 부정경쟁행위 이슈도 크게 문제 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한국의 중소기업 N사는 여러 의료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였는데, C사의 기술과 매우 유사한 진단 면봉을 생산할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었고,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빠르게 상당한 물량의 진단키트를 공급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준비는 사전에 해당 분야에 대한 FTO(freedom to operate) search, 특허동향 조사 등을 통해 특허 침해 리스크 뿐 아니라, 속지주의에 원칙에 따른 국가 별 특허 공백, 자유실시기술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숙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래서 N사는 특허 공백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전량을 생산해 국내 시장에 판매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C사가 특허권을 획득하지 않은 UAE와 같은 국가에도 수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특허 정보는 비즈니스 운영에 있어서, 특허 침해 리스크에 대한 정보뿐만 아니라 특허 공백 기술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에, 여러 중소기업들에게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에 대한 기회를 줄 수 있다. 특히, 속지주의에 의한 특허권 효력의 지역적 한계는 기술 추격자 포지션에 있는 여러 기업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고, 코로나 사태에서 N사는 이러한 기회를 잘 포착한 아주 좋은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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