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우리는 조금 더 불편해질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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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우리는 조금 더 불편해질 용기가 필요하다
  • 성동규 기자
  • 승인 2020.06.10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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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성동규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한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냈다. 그중 하나는 재난이 약자들에게 가혹했다는 점이다. 지난 3월 12일 경기 안산시의 한 빌라 4층에서 5층 사이 계단에서 쿠팡맨이 숨을 거뒀다. 

그는 쿠팡이 자랑하는 ‘새벽 배송’ 중이었다. 지난달 24일과 25일. 경기 부천시에 있는 쿠팡 물류센터에서 3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 3일 뒤에는 경기 고양시 쿠팡 물류센터 직원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들 모두 ‘새벽 배송’을 위해 아프면 사나흘 간 집에 머물라는 개인 방역 수칙을 지키지 못하고 물품을 배송‧분류하거나 서류작업을 했다. 우리는 빠른 배송에 편리한 측면만을 봤을 뿐 노동자들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어떤 희생을 치르고 있는지에 대해 간과하고 있었다.

노동자들을 그야말로 갈아 넣는 이와 같은 무리수가 가능했던 원인을 손님을 왕으로 모시는 서비스업의 특성에서 찾는 이가 많다. 그러나 이 해석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소비자인 동시에 노동자라는 정체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

쿠팡 노동자들의 현실이 우리와 무관하지 않은 이유다. 내가 산 물건을 다음날 받을 권리와 노동자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건강하게 일 할 수 있는 권리 중 무엇을 우선시해야 하는지 생각해보라. 후자를 선택하는 게 훨씬 더 행복하고 건강한 사회가 아닐까.

그렇기에 우리는 조금 더 불편해질 용기가 필요하다. 조금 천천히 배송받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아량과 사람은 ‘갑과 을’로 나뉠 수 없다는 관용을 갖춘다면 우리 사회가 한층 더 성숙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게 명백하다.

이 이야기를 확장하면 임대차 계약과 맞닿는 부분이 많다. 집주인은 주거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세입자는 그 서비스를 소비하는 관계에 불과하지만 철저한 상하관계다. 고객이 아닌 서비스제공자 즉 집주인이 왕으로 도치됐을 뿐이다.

약자들이 주거난에 더 취약하다는 것도 비슷하다. 어쩌면 기형적인 주거문화가 만든 변형 바이러스에 이미 우리의 마음이 병들어 버린 걸지도 모르겠다. 최근 정부와 여당은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법률을 정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사유재산권과 주거권의 충돌로 논란이 뜨겁다. 기자는 해당 문제에 있어서도 우리가 조금 불편해질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권리에 서열을 정할 순 없지만, 주거권 강화에 뒤따를 파급력을 고려했으면 한다.

이 제도를 통해 집주인과 세입자가 거의 동등한 위치로 올라선다면 딱히 무리하게 빚을 내서 집을 살 필요가 없어진다. 이에 따라 주거서비스에 들어가는 비용이 줄어들면 다른 쪽으로 투자하거나 소비할 수 있는 여력은 자연히 늘어난다.

임대시장 안정화는 집값 안정과 민간 소비 회복시킬 수 있는 촉매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나아가 부동산 계급론 따위를 후대에 유산으로 물려주지 않아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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