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재용 잡겠다고 정당성 버린 검찰, 심의위 열어 시민이 판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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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이재용 잡겠다고 정당성 버린 검찰, 심의위 열어 시민이 판단해야
  • 이상래 기자
  • 승인 2020.06.09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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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부 이상래 기자
산업부 이상래 기자

[매일일보 이상래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이 결국 기각됐다.

검찰은 이 사건을 수사하면서 두 가지를 잃었다. 조직이 정당성을 확보하기에 필요하다는 ‘신뢰와 명분’이라는 덕목을 검찰이 스스로 저버린 것.

검찰은 양손에 ‘기소와 수사’를 쥐고 있다. 이 어마무시한 힘은 국민으로부터 나왔다. 국민이 검찰을 신뢰할 수 없다면 언제든지 그 힘을 뺏을 수 있는 나라가 국민이 주인인 대한민국이다. 그동안 국민은 검찰이 ‘무소불위’ 권력을 휘둘렀다며 ‘개혁’을 요구해왔다. 그런 요구가 터져 나올 때마다 검찰이 내세운 것이 스스로 바꿔보겠다는 ‘셀프 개혁’이었다.

하지만 검찰은 이번 일을 통해 스스로 개혁할 수 없는 조직임을 드러냈다. 검찰의 대표적 ‘셀프 개혁’이 수사심의위원회 설치다. 심의위는 2018년 검찰이 수사 중립성 확보와 권한 남용 방지 취지를 담아 스스로 만든 제도다. 이 제도를 도입할 당시 문무일 검찰총장은 “검찰이 불신을 받는 내용을 보면 수사 동기를 의심하는 경우가 있고, 과잉수사 논란 등 문제 제기도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은 이 부회장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심의위 제도를 ‘셀프 무력화’시켰다. 이 부회장 측이 심의위 소집을 신청했지만 구속영장 청구를 강행한 것이다. 검찰이 언제든 심의위가 ‘요식행위’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실제 심의위 결정은 구속력이 없다. 검찰은 심의위 결정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결정에 따라 수사를 밀어붙일 수 있다.

국민과의 약속을 깨면서 무리수를 둔 구속영장은 결국 법원에 가로막혔다. 애당초 이번 구속영장 청구는 형사소송법이 정한 3가지 구속사유에 해당되는 것이 한 가지도 없는 ‘3無’ 영장 청구였다. 이 부회장은 주거지가 일정했고, 도주 염려도 없다. 증거 인멸 염려가 있다고 주장하기엔 검찰이 1년 8개월의 수사 기간 동안 벌인 압수수색이 50회, 소환조사만 430회다. 2~3개월 만에 집중 수사해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며 검찰이 내세운 ‘환부수사’는 공염불로 그쳤다.

실제 법원의 판단도 같았다. 재판부는 기각 이유에 대해 “검찰은 그간의 수사를 통하여 이미 상당 정도의 증거를 확보했다고 보인다”며 “불구속 재판의 원칙에 반해 피의자들을 구속할 필요성 및 상당성에 관해선 소명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400권, 20만쪽 분량의 수사기록을 내세워 ‘증거가 차고 넘친다’고 큰소리쳐왔지만 법원으로부터 돌아온 판단은 “기본적 사실 관계는 소명됐다”에 그쳤다. 소명된 대상이 ‘범죄 혐의’가 아닌 ‘사실 관계’에 국한된 것이다. 이 부회장 구속은 고사하고 수사에 대한 ‘명분’마저 잃은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당초 이번 수사를 두고 “수사팀이 7~8월 검찰 인사가 임박하면서 서둘러 마무리 지으려 한다”는 말이 돌았다. 여기에 검찰 입장에서 1년 8개월 ‘먼지털이’식 수사를 벌려놔 이 부회장 구속영장 청구를 안 할 수 없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이제라도 원칙을 지켜 절차대로 진행해야 한다. 이번 사안이 국민적 관심사가 집중된 중대 사안이라는 점은 모두가 수긍할 것이다. 이제라도 심의위를 열어 이 수사가 과연 타당한지 시민이 직접 판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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