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정부 사정(査定)과 재벌 사정(事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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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정부 사정(査定)과 재벌 사정(事情)
  • 황동진 기자
  • 승인 2013.04.21 11: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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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지 불과 두 달여만에 재벌 기업들이 태도가 달라졌다.

새정부 경제민주화 정책에 너나할 것 없이 앞장서며 마치 ‘나 이렇게 달라졌어요’라며 누군가를 향해 알아달라는 듯 순한 어린양으로 변했다.

골목상권 침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커피·베이커리·MRO(소모성자재구매) 등 사업에서 철수했으며, 대규모 비정규직 사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신입사원 공채에서는 학벌과 성별 차별도 없앴다.

뿐만 아니라 노약자·장애인 등 취약계층의 고용·복지 향상 등을 위해 자회사를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하거나 새로이 설립하는데도 팔을 걷어부쳤다.

과거 성탄절 때만 보이던 재벌 총수들의 연탄 나르는 모습이 새정부 들어선 두달여간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런 재벌 기업들의 달라진 모습에서 위정자를 찬찬히 가려내려는 듯한 모습이다.

코오롱이 대표적이다. 이웅열 회장은 빵집 ‘스위트밀’ 사업 철수를 발표하며 자신이 보유한 회사 지분을 그의 부인이 이사장으로 있는 비영리장학재단에 기부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회사는 자본잠식 상태로 주식 가치를 상실한지 이미 오래였다. 면피용 생색내기가 아니냐는 핀잔이 나왔다.

더욱이 며칠 뒤 코오롱인더스트리 주총에서 이 회장은 수십억원의 배당금을 챙겨갔다. 이 회사는 작년 영업이익 2940억원으로 전년 대비 26.9% 줄어들었다.

곧바로 정부 사정(査定)이 단행됐다. 4대강 사업과 관련해 코오롱글로벌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했으며, 코오롱워터텍이 공무원 등에게 10억원대 현금 로비한 정황을 포착, 수사에 들어갔다.

재벌 기업들은 울상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기업 활동이 위축된 상황에서 대북 관계 악화 등 겹겹이 악재다.

그렇다고해서 예전처럼 계열사끼리의 거래도 일감몰아주기 과세와 여론에 밀려 할 수 없는 처지다.

▲ 황동진 탐사보도 팀장.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새정부의 경제민주화와 지하경제양성화 정책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에 나서고 있음에도 오히려 정부는 재계의 사정(事情)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하소연한다.

참다못한 전경련이 쓴소리를 내뱉었다. 18일 전경련은 "편법 상속이나 골목 상권 침해가 아닌 정상적인 기업 활동에서 발생하는 내부거래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 과세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며 공개적으로 이의를 제기했다.

하지만 재계의 사정이 어떻든 새정부의 사정은 계속될 전망이다. 세수확보를 위해서 불가피하다는 정부와 해도 너무하다고 볼멘소리를 내는 재계 사이의 입장 차이를 좁히기 위해서는 서로가 한발 물러나 슬기로운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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