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보다 초상화가 소중하다는 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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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보다 초상화가 소중하다는 北
  • 김경탁 기자
  • 승인 2013.04.17 18: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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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김정일’ 초상화 지킨 선원 사연 뒤늦게 선전 “왜?”

[매일일보] 북한의 독재집권당인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17일자 신문에 조업 중 풍랑을 만나 목숨을 잃으면서도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상화를 안전하게 지켜낸 선원들을 칭송하는 ‘미담기사’(?)를 실었다.

사건 자체가 황당하고 이를 미담이라 칭송하는 것은 더 어이없는 일이지만 지난해 11월에 있었던 이야기를 뒤늦게 소개한 배경에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내부적으로 최고지도자를 중심으로 주민 결속을 다지는 동시에 대외적으로는 이른바 ‘존엄훼손’의 무게감을 알고 조심하라는 시위로 보인다는 말이다.

노동신문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평안남도 증산군 앞바다에서 파도를 만나 침몰한 ‘ㄷ-자-91885’호 선원 5명은 죽음의 순간까지 김 주석과 김 위원장의 초상화를 습기가 새어들지 않게 보호하는 ‘모범’을 보였다고 한다.

노동신문은 선원들이 선박 침몰 당시 구조하러 온 다른 배에 “더는 배를 구원할 가망이 없다”며,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초상화를 안전하게 모시었다. 염려말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고 전했다.

이들 선원은 사고 15일 후인 지난해 12월4일 황해남도 룡연군 장산리 앞바다 기슭에서 초상화를 넣은 수지통과 몸을 밧줄로 묶은 채 시신으로 발견됐다.

노동신문은 “보름 동안이나 바다에서 표류했지만 그들이 지켜낸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초상화에는 한 점의 물방울이나 습기도 스며들지 않았다”며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실천적 모범으로 보여준 그들의 수령 결사옹위의 모습을 우리는 영원히 잊을 수 없다”고 밝혔다.

▲ 탈북여성들로 이뤄진 뉴코리아여성연합 회원들이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KT 앞에서 북한 주민들의 굶주림 외면한 3대 세습, 전쟁놀이에 나선 김정은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뉴시스>

노동신문 “최고 존엄 모독에 단호하고 실제적 조치”

노동신문은 같은 날자 신문 1면에 ‘태양절’(김일성 생일)에 열린 남측 보수단체의 반북 퍼포먼스로 인해 한반도에 전쟁상태가 조성됐다며 전 주민에게 만반의 대응 태세를 촉구하는 사설도 실었다.

‘우리의 최고존엄을 건드린 원쑤들에게 복수의 철추를 내리자’는 제목의 이 사설은 “우리의 최고 존엄을 훼손시킨 남조선 괴뢰들의 만행은 이 땅에 끝끝내 핵전쟁의 참화를 가져오는 가장 위험천만한 행위”라며 “이로 인해 조선반도의 정세는 더는 되돌려 세울 수 없는 전쟁상태에 직면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각 분야의 노동당 정책을 전 주민에게 알리는 권위 있는 글로 주로 내부 이슈에 초첨을 맞춰왔던 노동신문 사설이 이처럼 대남 문제를 다룬 것은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사설은 “우리의 최고존엄은 천만군민의 제일생명이고 억척불변의 기둥이며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신성한 것”이라며 “내외에 천명한대로 단호하고도 실제적인 초강경 조치들을 연이어 취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전군, 전민이 최후결전 진입 태세를 견지하며 반미전면대결전의 결정적 승리를 앞당기기 위한 투쟁을 강도 높이 벌여나가야 한다”고 밝힌 신문은 ▲노농적위대 등 민간 무력의 항시 격동상태 유지 ▲군수공업 부문의 탄약 및 군수물자 생산 제고 ▲민간 분야의 전시체제 전환 준비 만전 등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노동신문은 이날 ‘능지처참해도 시원치 않을 천하의 악행’이라는 제목의 논평에서도 “서울 한복판에서 최고존엄 모독 행위를 감행한 것은 우리에 대한 노골적인 선전포고”라며 이로 인해 벌어지게 될 모든 사태의 책임은 전적으로 남측 정부에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북한은 전쟁 발발 등 유사시 김정일 위원장과 그 부모의 초상화·동상 등을 보존하도록 하는 원칙을 세우고 주민들에게 교육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공산권 독재국가들은 체제변경시 제일 먼저 독재자의 동상을 넘어뜨리고 초상화를 불태우는 퍼포먼스를 벌이곤 했다.

▲ 노동신문은 지난 9일 김정일의 국방위원장 추대 20주년을 맞아 그의 생전 현지지도 활동 사진을 보도하는데 2면 전체를 할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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