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재용 부회장과 ‘범죄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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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이재용 부회장과 ‘범죄경제학’
  • 성동규 기자
  • 승인 2020.05.17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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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성동규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6일 승계 과정에서 이뤄진 여러 위법 행위에 대해 머리를 숙였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사과는 자발적인 게 아니다. 삼성준법감시위원회(준감위)의 권고에 따른 것으로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결심공판에서 형량을 줄이려는 계산이 깔려있다.

애초 준감위 설치를 귀띔한 건 파기환송심의 재판장인 정준영 부장 판사다. 그는 지난해 10월 미국의 연방양형지침서 8장을 바탕으로 한 준법감시제도 도입을 처음 언급했다. 이 제도는 기업의 고위 임원이 법을 위반했을 때 준감위에서 감시하면 형을 낮춰준다는 내용이다.

정 판사는 올해 1월 자기 뜻을 더욱 확실히 했다. 아예 ‘준감위의 실효성 여부를 양형에 반영하겠다’라고 발언한 것. 그동안의 여러 상황을 종합했을 때 이 부회장의 사과에 진정성이 있으리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우리 사회에 두 가지 신호를 보냈다.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불편한 진실의 연장이자 부를 축적하기 위해선 법을 어겨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너무나도 노골적이어서 낯이 뜨거워질 정도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범죄를 억제할 수 있을까. 학계에서 최초로 범죄 행위를 경제학적인 관점으로 설명한 미국 시카고대 게리 베커(Gary Becker) 교수는 검거율을 높이거나 형량을 높여야 한다고 주창했다. 그의 이론은 경험에서 비롯됐다.

베커 교수는 컬럼비아대에 재임하던 시절, 하루는 강의시간에 늦어 급하게 주차할 곳을 찾다가 길옆에 불법주차를 결심하게 됐다. 그런데 범죄 행위의 결정이 강의시간 준수, 불법주차 단속에 걸릴 가능성, 벌금의 크기 등 경제 논리에서 비롯된 것을 깨닫게 됐다.

그가 생각한 범죄 행위의 손익 계산 공식은 이렇다. 범죄를 저지를 때 내야 하는 예상 비용(기대비용) = 적발될 확률 × 처벌받을 강도. 예를 들어 불법 주차 과태료가 5만원이고 20번 중 1번만 단속해 적발되면 기대비용은 2500원이다.

주차비가 5000원이라면 범죄를 저지르는 게 큰 효용을 낼 수 있는 셈이다. 이 부회장과 같은 재벌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로 치환해서 생각해보자. 불법을 저질러 가장 큰 이익을 볼 수 있는 건 대부분 부동산과 관련한 것들일 거다.

부정 청약, 불법 전매, 가격 담합, 탈세 등은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길 수 있다. 이에 비해 검거될 확률과 형량은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베커 교수의 이론대로라면 불법 행위가 좀처럼 근절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문제가 반복되는 데도 이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분명 누군가의 고의가 개입된 것으로 의심해야 한다. 그 주체가 입법·사법·행정기관일 수 있다. 심판받아야 할 이들이 처벌받고 또 그 죄가 은폐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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