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동학개미’ 아닌 ‘자본주의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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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동학개미’ 아닌 ‘자본주의 욕망’
  • 황인욱 기자
  • 승인 2020.04.07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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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황인욱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증후군(코로나19) 여파로 외국인이 ‘셀 코리아’를 외칠 때 개인투자자들은 주식을 대거 사들이며 증시 상향에 힘을 실었다. 1500대던 코스피는 어느새 1800선을 넘어섰다. 속칭 ‘동학개미운동’이다. 외세(외국인투자자)를 몰아내고 구국(코스피 방어)에 나서서다. 사회현상에 대한 익살스런 표현이다.

다만, 개인투자자의 의도에 초점을 맞춘다면 동학개미운동은 잘못된 표현일지도 모른다. 개인의 투자 목적은 국가경제를 살리겠다는 사명의식이 아닌 철저하게 차익 실현에 맞춰져 있어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6일 개인투자자는 코스피시장에서 8430억원을 던졌다. 9거래일 만에 매도 우위다. 코스피가 안정세에 접어들자 매도 적기로 보고 판 거다.

개인투자자의 욕망은 투자시장 곳곳에서 펼쳐졌다.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 간 증산 경쟁으로 유가가 급락하자 원유파생상품에 자금이 몰렸다.

지난달 개인투자자는 원유선물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상장지수펀드(ETF)를 6400억원어치 순매수했다. 유가 상승폭의 두 배를 벌도록 설계된 레버리지 상장지수증권(ETN)에도 4000억원어치를 투자했다.

원유를 두고 투기장이 펼쳐진 거다. 시장 과열에 원유선물 레버리지 ETN의 괴리율은 최대 61%까지 뛰었다.

투자자의 욕망은 국내에 국한되지 않았다. 코로나19 글로벌 확산으로 미 증시가 폭락하자 지난 달에만 123억8834억원 결제액이 미 증시에 쏟아졌다.

몰아치는 해외투자에 급기야 예탁결제원은 보도자료를 내고 해외 주식 투자자의 권리는 국내 주식과 동일하게 보호받는다고 알리기까지 했다. 수많은 투자자들이 외화증권 예탁 안정성에 대한 불안감을 호소해서다.

이 시점에서 ‘동학개미’라는 이름은 이미 무색하다. 반외세가 아니기 때문이다.

‘동학개미운동’이 증권가의 유행어라는 점에서 재미있게 사용하면 그만일지 모른다. 표현 하나 하나를 문제 삼는다면 소위 ‘진지병 환자’로 보이기 십상이다.

그런데, 언어가 가진 정치성을 생각하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는 언어를 곧 명령어(Mot d'ordre)로 봤다.

동학개미운동이라는 표현에서 주가가 오르기를 기대하는 투자자의 얼굴을 떠올리기는 여간 쉽지 않다. 개인투자자는 욕망의 주체가 아닌 증시를 구하기 위해 등장한 역사적 주체로 생각된다. 폭락장에 삼성전자 주식으로 이득보려고 했을 뿐인데도 언어는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국경을 넘나드는 자본주의적 욕망표출이 ‘동학개미운동’이라는 표현 하나로 ‘반외세·구국운동’이라는 이념의 고리에 사로잡힌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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