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업계에 등장한 ‘전자투표’…신뢰성‧투명성 높지만 도정법 걸림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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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비업계에 등장한 ‘전자투표’…신뢰성‧투명성 높지만 도정법 걸림돌
  • 이재빈 기자
  • 승인 2020.03.25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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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구 증산2, 수색4·9구역 전자투표로 서면결의 받아
“도정법 상 관련조항 없어 소송 휘말릴 우려도 있어”
지난해 11월 열린 서울시내 한 조합의 조합총회 전경. 최근 인파가 몰리는 것을 방지하고자 서면결의를 전자투표로도 받는 정비사업지가 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매일일보 이재빈 기자] 코로나19가 맹위를 떨치자 전자투표를 도입하는 정비사업지가 늘어나고 있다. 정비업계 관계자들은 비용절약 측면에서, 법조계는 투명성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 하고 있는 도시정비법 조항이 발목을 잡고 있다.

25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은평구 ‘증산2구역재개발조합’은 관리처분변경총회에 앞서 진행한 서면결의서 접수를 전자투표로도 진행하고 있다. 조합원이 개인 휴대폰 인증 절차를 거쳐 전자투표 사이트에 접속, 상정된 각 안건들에 대해 찬반 의견을 개진하는 방식이다.

조합 관계자는 “서면결의를 전자투표로도 제출할 수 있도록 조합 정관을 변경했다. 조합원 선호에 따라 서면이나 전자투표 중 선택해 결의서를 제출할 수 있도록 했다”며 “인근 수색4구역과 수색9구역도 같은 방식으로 서면결의서를 제출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정비업계 관계자들은 전자투표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당장 도입하기는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시내 모 조합 조합장은 “전자투표제가 워낙 생소한 방식인데 증산2구역이 용기 있는 결정을 했다”며 “조합마다 다르겠지만 집행부는 기본적으로 트집잡힐 일을 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도정법 상 존재하지 않는 전자투표를 정관변경까지 해가며 진행하는 것은 조합원들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받지 않는 한 힘들다”고 귀띔했다.

그는 다만 “총회 결과에 불만을 품은 이들이 전자투표의 법적 효력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서 소송전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며 “전자투표는 필요하다고 보지만 관련법 개정이 선행되지 않는 한 대다수 조합이 도입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정비사업지 추진위원장은 “코로나19 정국임을 고려하면 괜찮은 방안으로 보인다. 하지만 스마트폰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고령자에 대한 대안이 필요하다”며 “키오스크가 도입될 때도 이같은 문제가 사회적 논란거리로 작용하지 않았나. 이미 한국 사회 전반에 전자투표가 녹아들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고령자 대리 투표 등 명의도용같은 보안 문제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구철 미래도시시민연대 조합지원단장은 “전자투표에 대한 관리감독 체계만 완비되면 다수의 조합이 도입할 것”이라며 “현재 전자투표를 담당하는 업체 중 공신력 있거나 검증된 곳이 많지 않다. 선거관리위원회나 국토부 산하 공기업이 나설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그는 이어 “비용적인 측면에서 보면 전자투표를 시행할 경우 직접 총회를 개최하는 것보다 상당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며 “조합 입장에서 총회 개최비는 상당히 부담되는 부분이다. 총회 지출을 말미암아 조합원 간 갈등이 발생하는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법무법인 정향의 김예림 재개발·재건축 전문 변호사는 “도정법 상 전자투표를 인정하는 조항이 없어 전자투표를 서면결의로 인정할 수 있다는 법원의 판례가 없으면 소송에 휘말릴 수도 있다”면서도 “증산2구역의 경우 정관에 전자투표 내용을 도입했기 때문에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고 내다봤다.

김 변호사는 이어 “정비사업 관련 법적 분쟁 중 서면결의 위조가 상당한 비율을 차지한다”며 “전자투표가 정착되면 조합총회 등에 대한 공정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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