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쓸 카드가 없다…백약이 무효한 금융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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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쓸 카드가 없다…백약이 무효한 금융시장
  • 이광표 기자
  • 승인 2020.03.23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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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스와프 체결도 '반짝효과' 그쳐...바닥난 가용수단
관망 거두고 '뒷북' 시장개입...시장심리 불안 부추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비상경제회의에서 금융당국 수장들 사이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9일 청와대에서 열린 비상경제회의에서 금융당국 수장들 사이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매일일보 이광표 기자] 코로나19發 금융시장 붕괴 속도가 심상치 않다. 코스피 지수는 1400포인트대로 주저앉으며 11년 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정부가 600억달러 규모의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을 단행하며 금융시장의 '급한불'은 끄는 듯 했다. 하지만 효과는 하루를 못 넘겼다. 지난 20일 반등했던 주가는 주말을 보낸 뒤 23일 다시 폭락을 면치 못했다. 진정세를 되찾았던 원·달러 환율도 다시 치솟았다. 

글로벌 경제가 휘청이고 있는 가운데 수십조원에 달하는 금융시장 안정화 대책도 연일 쏟아내는 중이지만 '속수무책'이다.

전문가들은 과거 금융시장에서 불안 요인이 터진 2008년 금융위기 때와 달리 지금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실물경제 위축이 금융시장으로 전이돼 상황이 더 심각하다는 진단이다. 

코로나19 백신 개발 등 사태가 종식되지 않는한 '달러 가뭄'에 따른 시장의 불안은 지속될 수 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가용수단 총동원 시작한 정부

금융당국은 지난 20일 금융권과 공동으로 10조원 규모의 채권시장안정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현재 10조원 규모로 예상되지만 그 이상이 될 수도 있어 보인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채권시장안정펀드는 이미 돼 있기 때문에 작동까지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며 "시장 수요를 못 맞출 정도로 늦지는 않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도 10조원 규모의 채권시장안정펀드가 조성된 바 있다. 당시 은행이 8조원, 생명보험사·손해보험사·증권사 등이 2조원 가량을 부담했다.

이와함께 금융권은 최근 폭락장이 연출되고 있는 증권시장 안정을 위해 증권시장안정펀드 조성에도 적극 참여하기로 했다. 최대 10조원 규모가 될 거라는 예상이다.

한국은행도 움직였다. 채권시장 안정을 위해 1조 5000억원(액면가 기준) 규모의 국고채 매입을 실시한다고 했다.

이보다 앞서 정부는 지난 19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제1차 비상경제회의를 열고 50조원 이상의 대규모 금융패키지 프로그램을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소상공인을 위한 1.5% 저금리의 긴급경영자금 12조원을 비롯해, 중소기업.소상공인을 위한 5조 5000억원 규모의 특례보증, 피해 영세소상공인을 위한 3조원 규모의 전액보증지원 등이 포함됐다.

◆카드 먹히려면 더 빠르고 더 과감해야

금융당국은 지난주까지만 해도 주가 폭락과 환율 급등 등 금융시장 불안 상황에도 불구하고 뒷북 대책을 내놓는다는 비판을 받았다. 대표적 사례가 지난 13일에야 꺼내든 '공매도 금지' 대책이었다.

코로나19로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지며 주가 하락을 부추기는 공매도를 금지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쳤지만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던 당국은 일정 종목에 대한 공매도 금지책을 내놨다가 뒤늦게 전면 금지 카드를 내놨다.

뒤늦게 시장 개입 필요성을 절감한 정부는 지난 19일 한미간 600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 체결을 기점으로 관망하던 자세를 거두고 50조원 규모의 금융패키지 프로그램 가동, 채권.증권시장안정펀드, 한국은행 국채매입 등 각종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오는 24일 열리는 대통령 주재 2차 비상경제회의에서는 기존 대책을 보다 구체화하는 동시에 새로운 대책이 추가로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2차 추가경정예산 편성도 관심이다.

이같은 정부의 대응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선제적 대응 보다는 번번이 한 발 늦은 정책 대응으로 일관하며 시장에 반영되는 효과를 스스로 놓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경록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금융당국이 내놓은 채권시장안정펀드에 대해 "금융시스템의 문제가 아닌 보건문제여서 코로나19의 두려움이 존재하는 한 각국의 기준금리 인하와 유동성 공급에도 빠르게 해결되기는 어렵다"면서 "채권안정펀드가 2008년 때보다 더 오랜 기간 유지되고 규모도 점차 커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금융시장에서는 이번 한미 통화스와프도 단기적으로 시장을 진정시킬 수 있어도, 장기적인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통화스와프는 협상을 맺은 국가간 비상시 각자의 통화를 빌려주는 계약으로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일종의 '마이너스 통장' 개념이다. 

김유미 키움증권 리서치센터 연구원은 "시장안정 효과는 단기에 그칠 수 있다"며 "시장이 안정되려면 달러 강세가 제한돼야 하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미국과 유로존을 중심으로 코로나19 확진자수가 늘고 있고, 경기침체 신용리스크에 대한 불안이 여전해 원·달러 환율 상승 압력이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통화스와프 외에도 추가 수단을 지속 제시하겠다는 방침이다. 외환보유액을 활용해 금융기관과 기업에 유동성을 직접 공급하거나 시장에 개입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도 활용된 방안이다.

박성욱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두 번의 경제위기에서 외화유동성 부족 우려가 항상 우리 경제에 위협이 됐다는 점에서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며 "기업과 금융회사의 외화자금 수요를 면밀하게 모니터링하고 시장 기능이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외화자금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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