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일 국정표류’ 누구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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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일 국정표류’ 누구 책임?
  • 김영욱 기자
  • 승인 2013.03.18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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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에 떠밀린 합의… ‘상처뿐인 정부조직법 타결’

[매일일보] 47일간의 표류 끝에 17일 결론지어진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상처뿐인 타결’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최대 쟁점인 방송 관련 정책의 미래창조과학부 이관 문제가 대부분 박근혜 대통령의 원안에다 민주통합당 요구가 일부 수용되는 형태로 정리되면서 이날 마침내 타결됐다. 이로써 박근혜정부가 본격 출범의 틀을 갖추게 됐으나 역대 최장·최악으로 기록될 이번 협상은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큰 후유증을 남겼다.

정부조직 개정안을 둘러싼 여야 협상은 결국 승자 없는 싸움이었다. 지난 1월 30일 국회에 발의된 이후 30여차례 회동을 가졌지만 타결 문턱까지 갔다가 다시 멀어지기를 반복하며 4차례나 본회의 처리시한을 넘겼다. 상대가 받을 수 없는 협상안을 제시하며 여론전에 치중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나선 후에야 결국 '나눠먹기식' 협상으로 타결을 이뤘다.

적대적이고 소모적인 협상 과정을 통해 청와대는 물론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모두 큰 상처를 입었다는 평가다. 정권 출범기 새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배려기간인 ‘허니문’ 기간이 송두리째 날아가 향후 청와대와 정치권, 여야 관계가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가장 크게 타격을 받은 쪽은 박근혜 대통령이란 해석이 많다. 새 정권 출범이라는 국운 상승기를 온통 ‘나쁜 뉴스’로만 흘려보냈기 때문이다.

특히 ‘불통’ ‘일방주의’라는 야당의 집요한 공격에 박 대통령 이미지 자체가 적잖이 훼손됐다.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48%의 국민의 마음을 잡을 기회도 더 멀어졌다는 지적도 있어 향후 보다 적극적인 ‘국민 대통합’ 행보가 요구된다.

박 대통령이 협상 과정에서 보여준 모습은 대선 과정에서 약속했던 ‘국회존중 대통령’과 거리가 멀었다. 정부조직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정치권의 협조를 구하지 않아 여당에서조차 비판을 받았다. 여야 대치 과정에서 여당 지도부에게 협상의 여지를 던져주지 못했다. 대국민담화를 통해 야당을 압박하는 모습은 향후 대야 관계에서 큰 부담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헛껍데기’ 지도부임이 드러난 여당의 손실도 만만찮다. 원내 제1당으로서의 정국 돌파력도 보여주지 못하면서 야당은 물론 청와대와 여당 내부에서조차 비판이 거셌다. 당 주변에서는 이번 일이 잠잠했던 친이명박계를 비롯한 비주류가 반기를 들 빌미가 될 것이란 경고가 들린다.

이번 협상 과정에서 새누리당은 ‘꼭두각시 정당’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대통령의 입장만 옹호하는데 급급한 나머지 협상력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당 지도부는 급기야 ‘국회선진화법’을 희생양으로 만들었다. 당 일각에서는 “지도부가 눈치만 보고 있다”며 내분 양상을 보였다.

민주당은 ‘발목 잡는 야당’이라는 이미지가 더욱 짙어졌다. 방송의 공정성 문제 때문에 반대한다면서도 왜 법이 바뀌면 공정성이 훼손되는지 국민을 설득하지 못했다. 비주류인 김영환 의원이 “말로는 국민들을 위한다 해놓고 오기의 정치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을 정도다.

개정안 협상은 1월 30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처음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을 때부터 난항이었다. 인수위의 ‘느림보’ 행보로 역대 정부보다 개정안 제출이 상당히 늦어졌는데도 박 대통령과 여당은 야당 설득 노력은 접어두고 당위성 설파에만 신경을 쏟았다.

박 대통령은 2월 25일 취임 이후 계속 원안을 고수했고 야당은 반대만 외치며 날을 세웠다. 개정안 문제가 뜻대로 풀리지 않자 박 대통령은 지난 3일 여야 대표단을 청와대로 초청했지만 민주당이 거부했다.

새누리당은 양측 사이에 끼어 아무런 협상력도 발휘하지 못했다. 박 대통령 입만 쳐다보며 민주당 설득의 여지를 만들지 못했다.

청와대와 두 당이 막판 사흘간 ‘몰아치기’ 담판으로 개정안 문제를 매듭지은 데 대해서도 국민 시선은 곱지 않다. “도대체 언제 국정을 정상화하느냐”는 여론의 압력에 밀린 결과일 뿐 진지한 대화와 타협의 결과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박 대통령은 이날 협상 타결에 “감사드린다”며 “새 정부와 여야가 힘을 합쳐 미래부를 활성화해 우리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다함께 노력해주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15일 협상 막판에 개입해 ‘구원투수’ 노릇을 했으나 고집스런 이미지를 남겼다. 야당을 압박하는 모습으로 대야 관계에서 잃은 것도 있다.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해선 개선이 필요한 대목이다. 여야의 정치력 회복도 시급하다. 지루한 줄다리기에 박 대통령이 협상 전면에 나서면서 여당 지도부는 리더십 위기에 직면했다.

국정공백 사태는 상당 부분 해소되겠지만 비정상 상황도 여전하다. 거시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는 현오석 후보자가 취임해도 이달 하순에나 정상업무가 가능하다.

추가경정예산 편성과 같은 거시정책은 4월 재·보선과 맞물려 1분기를 넘겨서야 결정된다. 정부가 경제규제를 풀려 해도 관련 법안이 상반기 내내 표류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정치권 리더십 실종에 민생법안이 발목 잡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으며 작년 말부터 시작된 식품과 공공요금 인상으로 서민 시름도 깊다. 기업은 조직개편 지연에 따른 정책 공백으로 투자 등 핵심 경영방침을 못 정했다.

행정안전부는 정부조직법 개정안과 각 부처 직제 개편안이 이번 주부터 시행될 수 있도록 즉각 후속조치에 착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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