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라임 사태에 ‘꼬리’ 자르는 금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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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라임 사태에 ‘꼬리’ 자르는 금융사
  • 박수진 기자
  • 승인 2020.02.18 14: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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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박수진 기자] “무엇보다도 연말 인사평가를 앞두고, 라임자산운용 스캔들 관련 문책성 인사를 두려워 하는 자들의 책임전가와 음해이다.”, “문제의 해결보다는 책임전가를 통한 연명에 급급한 분들이 고이 즈려 밟아 지나가실 수 있도록 가시밭에 기꺼이 엎드린다.”, “애초 핵심 문제의 해결과 우리팀원들 거취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사표낼 생각도 없던 내가 사표수리불가와 연봉삭감가능성 통지를 받아도…”  

위 글은 직장인 커뮤니티 애플리케이션 ‘블라인드’ 앱에 올라온 글로 지난해 12월 초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글의 내용은 1조원대 손실이 예상되는 ‘라임사태’와 관련, 한 증권회사 판매사 직원이 직장 내 ‘꼬리 자르기’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당시 라임 사태 논란은 고조돼 있었다. 지난해 7월 라임자산운용의 자전거래를 통한 펀드 수익률 돌려막기 의혹 등이 제기됐고, 금융당국이 라임자산운용 사태와 관련해 전수조사를 펼쳤다.

해당 글에서 글쓴이는 “나의 심신을 지치게 하는 것은 감독당국의 협조요청도 아니요, 스왑거래 관련 갭리스크도 아니요, 언론의 오보도 아니다”고 언급하며 윗선들의 책임전가로 힘들어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는 “다양한 시도를 함과 동시에 수시로 변하는 대내외 환경에 기민하게 대처하고자 역량의 200%이상을 발휘해 온 나와 나를 따른 친구들은 복잡다기한 구조를 설계한 나쁜 놈들이 됐다”면서 “지난 수년간 약 수백억원의 수익을 낸 사기꾼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문책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자들로부터”라고 비난했다. 

라임자산운용의 상품 판매와 관련해 판매사들도 현재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은행권을 중심으로 한 16개 판매사는 공동대응단을 만들어 실사 결과가 나오면 소송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공동대응단은 라임 측이 부실의 징후를 알고도 판매사에 판 건 아닌지, 펀드 수익률을 높게 보이려고 부정한 수단을 쓰지 않았는지 의심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목할 점은 이렇다. 판매사 스스로 피해자라고 생각하며 공동대응에 나서면서도 내부에서 책임질 사람은 말단 직원으로 한정하고 있다는 거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발생한 파생결합펀드(DLF) 대규모 손실 사태와 관련해 주요 판매 은행으로 꼽히는 우리·하나은행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우리은행장과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에게 ‘문책경고’라는 중징계를 내리며 연임 가도에 제동을 걸었다. 내부통제 부실 책임을 경영진에게 묻겠다는 것이다.  

앞서 은성수 금융위원장도 지난해 10월 DLF사태와 관련해 “금감원 조사를 통해 윗사람들이 책임질 일이 있다면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며 “징계가 꼬리 자르듯 말단 직원에게만 향해서는 안 된다”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라임사태에 연루된 증권사는 말단직원에게 책임을 전가할 게 아니라 해당부문 부문장까지 책임지는 게 맞다. 해당 증권사는 지난달 조직개편에 나선 바 있다. 이 과정에서 글쓴이의 억울함이 없는 인사가 진행됐는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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