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 붕괴 전조인가…부동산 처분 나선 기업들
상태바
거품 붕괴 전조인가…부동산 처분 나선 기업들
  • 성동규 기자
  • 승인 2020.02.17 16: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삼성·롯데·CJ·신세계 등 대기업 부동산 매각해 실탄 마련 분주
지난해 기업 부동산 매각 금액 2018년 대비 2배 이상 상승
전문가 “부동산 상황 등 평가했을 때 매각 이익이라고 판단”
삼성생명이 부영그룹에 매각한 서울 세종대로 사옥. 사진=연합뉴스 제공
삼성생명이 부영그룹에 매각한 서울 세종대로 사옥. 사진=연합뉴스 제공

[매일일보 성동규 기자] 최근 대기업들이 보유하고 있던 토지와 건물 등 부동산을 처분하고 있다. 이는 실적 악화와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선택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부 부동산 전문가는 이런 현상이 거품 붕괴의 전조일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놨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롯데, 신세계, CJ 등 굵직한 국내 대기업들이 잇따라 알짜배기 부동산을 매각하고 있다. 특히 유통기업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는 상황이다. 고(故)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의 경영 방식에 따라 재계에서도 유독 부동산을 많이 보유한 롯데그룹은 매각을 위해 부동산 위탁관리 회사인 ‘롯데리츠’를 신설하기도 했다.

롯데쇼핑은 지난해 롯데백화점 강남점, 롯데백화점 구리점, 롯데백화점 광주점, 롯데백화점 창원점, 롯데아울렛·롯데마트 대구율하점, 롯데아울렛·롯데마트 등을 롯데리에 넘기고 리츠 지분 50%와 1조629억원을 챙겼다.

이달 13일에는 롯데쇼핑이 전국에 있는 백화점, 마트, 슈퍼, 롭스 등 700여 개 점포 중 200여 개 점포를 3년 내 정리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침체에 허덕이는 상황에서 매장들이 매물로 나오기 시작하면 해당 지역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정용진 부회장이 이끄는 신세계그룹의 핵심 계열사 이마트는 세일앤리스백(매각 후 재임대) 방식의 자산 유동화를 택했다. 지난해 10월 전국 13개 자가점포와 토지 등을 마스턴투자운용에 매각하고 매각 후 이를 책임 임차해 9525억원의 자금을 확보했다.

CJ제일제당 역시 “재무구조 개선의 성과를 내라”는 이재현 CJ그룹회장의 특명 아래 지난해 말 서울 가양동 부지를 1조500억원에 시행사인 인창개발에 매각했다. 그 후 불과 사흘 만에 구로공장 부지를 2300억원, CJ인재원을 528억원 등 또다시 대규모 매각 계획을 내놨다.

이중 8500억원은 이미 확보했고 나머지는 1·4분기 최종 계약 이후 들어올 예정이다. 구로공장은 투자회사에 매각한 후 재임차해 쓰고, CJ인재원은 계열사인 CJ ENM에 넘기기로 했다. 다만 CJ제일제당은 부동산 매각 자금 1조3300억원은 차입금 상환에 사용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증권사 관계자는 “기업이 유동성을 확보하는 방법엔 차입, 회사채 발행, 주식매각, 부동산 매각, 유동화 증권 발행 등 여러 가지가 있다”면서 “부동산의 경우 가치 상승을 기대할 수 있어 선호하는 방식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그는 “유통기업들이 부동산 매각이라는 긴급 처방을 쓰는 이유는 궁지에 몰렸다는 것과 부동산 시장 상황을 부정적으로 전망한다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면서 “애초 기업들의 실적이 저조한데 부동산 시장만 활황인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다른 업종 대기업들의 부동산 매각도 두드러진다. 재계 대표 기업인 삼성그룹도 예외는 아니다. 우선 이재용 부회장이 이끄는 삼성전자의 경우 준공 20년 된 부산시 사하구 하단오거리에 자리한 사옥을 지난해 10월 부산지역 중견기업에 300억원에 매각했다. 

삼성생명도 지난 2016년 서울 태평로 사옥을 부영그룹에 5800억원대에 매각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서울 삼성동과 여의도 빌딩을 매각했다. 지방에 있는 사옥들도 여럿 팔았다. 이에 삼성생명의 부동산 보유 규모는 지난해 3분기 말 4조2307억원으로 4년 전(6조5900억원)보다 2조원 넘게 줄었다.

김성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부동산개혁본부 국장은 “국내 5대 재벌(삼성, 현대차, LG, SK, 롯데)이 소유한 토지 자산(장부가액 기준)은 2018년 말 기준으로 73조 2000억 원이다. 지난 1995년과 비교하면, 61조 원 증가한 수치”라고 말했다.

김 국장은 “역사적으로 땅과 건물을 사들여 자산을 불려온 기업들이 부동산을 매각하는 것은 예삿일로 보기 어렵다”면서 “일본 부동산 거품이 붕괴했을 당시 부동산을 많이 보유한 기업들의 재무구조가 급격히 악화된 사례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지난해 대기업의 부동산 매각 금액은 5조원 규모로 전년보다 2배 가량 급증했다”면서 “경제와 시장 상황이 더욱 악화되면 차익을 실현하기 위해 그동안 사들였던 부동산을 쏟아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