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 우려한 ‘식물정부’ 현실화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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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대통령 우려한 ‘식물정부’ 현실화 되나
  • 김영욱 기자
  • 승인 2013.03.05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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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조직법에 손발 묶여 2주 연속 국무회의 못 열어

[매일일보]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국회 처리 지연에 따른 박근혜 정부의 파행적인 국정운영이 취임 9일째를 맞는 5일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조직 개편안은 2월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이날에도 타결 가능성이 희박해 박근혜 대통령이 언급한 ‘식물 정부’가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새 정부는 매주 화요일로 정례화돼 있는 국무회의를 이날에도 개최하지 못했다. 지난 주에 이어 2주 연속 국무회의를 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헌법상 국무회의는 대통령을 의장, 국무총리를 부의장으로 하며 15일 이상 30인 이하의 국무위원으로 구성되는 정부의 최고정책심의기구이다.

정부의 모든 정책이 국무회의를 거쳐 집행된다는 점에서 국무회의가 열리지 않았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부 기능이 멈춰 선 것에 비유될 수 있다.

국무회의를 주관하는 행정안전부는 이날 국무회의가 열리지 않은 것과 관련해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가장 시급히 처리해야 하는데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니 국무회의를 열 이유가 없는 것 같다”면서 “국무회의에 상정할 각 부처 안건도 접수된 게 없다”고 말했다.

정부조직 개편안에 대한 국회 처리가 계속 지연되면서 행정 부처가 사실상 일손을 놓은 채 개점휴업 상태라는 것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지원 부서야 큰 문제가 없지만 정책 부서는 정책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할 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며 혼란에 휩싸인 부처 분위기를 전했다.

박 대통령은 전날 대국민 담화 발표 후 주재한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5일까지 정부조직 개편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새 정부는 식물정부가 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간다”고 우려했었는데 이같은 우려가 현실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여야는 전날에도 심야 협상을 벌였으나 정부조직 개편안에 대한 절충안을 찾지 못한 상태다.

새누리당은 이날 협상에서 핵심 쟁점인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에 대한 인·허가권과 법령 제·개정권을 모두 미래창조과학부로 이관해야 한다며 당초 법령 제·개정권은 미래부로 넘기고 인·허가권은 방통위에 남긴다는 입장에서 더 후퇴한 안을 내놓아 민주통합당의 반발을 샀다.

박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에서 “이것이 빠진 미래창조과학부는 껍데기만 남는 것이고 굳이 미래창조과학부를 만들 이유도 없다”고 발언한 이후 원안에 가깝게 새누리당의 입장이 급선회한 것이다.

여야는 2월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5일에도 협상을 계속한다는 방침이지만 타결 가능성에 대해서는 양측 모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부조직 개편안이 이날 처리되지 못하면 3월 임시국회로 넘어가게 된다. 새누리당은 5일 정부조직 개편안 처리를 위한 3월 임시국회를 단독으로 소집했다.

신의진 원내대변인은 이날 국회에서 한 브리핑에서 “정부조직 개편안의 조속한 처리를 위해 3월 임시국회 소집 요구서를 민주통합당과 함께 제출하고자 했으나 민주당이 불응해 새누리당 단독으로 제출하게 됐다”고 밝혔다.

임시국회는 여야 어느 한 쪽의 단독으로도 소집이 가능하지만 안건 처리를 위해서는 여야가 본회의 등 의사 일정에 합의해야 한다.


새 정부의 정상적인 출범은 그 만큼 뒤쳐지게 된다는 얘기다.

박 대통령은 이미 인사청문회를 통과한 장관 후보자의 임명을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 이후로 미루겠다고 밝혔었다.

4일까지 17명의 초대 내각 중 인사청문회를 통과한 장관 후보자는 유정복 안전행정부,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윤병세 외교부, 황교안 법무부 장관 후보자 등 4명이다.

박 대통령이 이들의 임명을 계속 미루면서 야권을 압박할지 아니면 장관 임명 후 꼬일대로 꼬인 국정을 바로잡아갈지는 확실치 않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정부조직 개편안이 국회에서 타결되지 않는 이상 국무회의를 통해서라기 보다는 수석비서관들과 함께 지금의 비상상황을 헤쳐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취임 후 일주일만인 2008년 3월 3일 첫 국무회의를 열었었다. 당시 첫 국무회의에는 새 내각 장관 후보자 중 4명이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해 전 정권인 참여정부 장관들이 일부 참석했었다.

한편 정부조직 개편이 어느 하나는 죽어야 게임이 끝나는 ‘치킨게임’이 되고 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민주통합당 모두 돌이킬 수 없는 감정싸움으로까지 전선이 확대되면서 결국 승자 없는 게임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감도 나오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대통령도 국민을 위해 미래부를 고수해야 한다고 하고, 야당도 국민의 편에서 방송의 미래부 이관은 허용할 수 없다고 하지만 대통령과 야당이 말하는 ‘국민’은 정작 무시만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는 두 당사자뿐 아니라 이를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쳐다보고 있는 관중(국민) 모두 패자가 되는 셈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4일 대국민 담화에서 “(미래창조과학부와 관련한 야당의 주장) 이 부분은 국민을 위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라고 강변했다.

박 대통령은 또 “대통령과 국회는 국민을 대신하는 의무를 부여받은 것이지 국민의 권리까지 가져갈 수는 없다”고도 했다. 미래 국민의 먹거리를 위해서라도 미래부가 정상 출범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희상 민주통합당 비대위원장은 이에 대해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일반국민이든 모두 법을 지켜야 한다”고 응수했다. 같은 날 약간의 시차를 두고 청와대와 야당 모두 ‘국민’을 볼모로 자신의 주장만 속사포처럼 내보낸 것이다.

한 정치권의 관계자는 이에 대해 “대통령이나 야당 대표나 모두 ‘국민’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국민을 생각한다면 그렇게 한 쪽이 죽어야 하는 게임은 애초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국회는 말싸움으로 허송세월하고, 정부는 국회만 때리며 허송세월하는 통에 국민만 죽어 나가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 민주통합당이 정부조직개편안을 두고 연일 날선 공방을 벌이고 있다. 청와대와 여야는 연일‘ 국민을 위해’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정작 국민들의 실망은 날로 커지고 있다. 2월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5일에도 정부조직개편안을 두고 여야간 정쟁은 계속되고 있어‘ 식물정부’는 당분간 계속될 수 밖에 없을 전망이다. 다음 임시국회는 빨라야 8일에 열릴 수 있다.

특히 정부조직 개편을 둘러싼 청와대와 야당 간 전선(戰線)이 감정싸움으로까지 확대되면서 상당 기간 이 같은 상황이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대통령이나 야당이나 자신의 주장을 굽힐 명분조차 아예 막아버려 이번 사태 해결이 좀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것은 나의 신념이자 국정철학이고, 국가의 미래가 달려있는 문제”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국가의 미래를 위해 이 문제만큼은 물러설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 등의 표현을 써가며 불퇴 의지를 밝혔다.

민주당 역시 “삼권분립의 민주주의 원칙에도 어긋나고” “입법부의 시녀화”라며 양보는 결국 의회의 권리를 스스로 내려놓는 것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과 민주당 모두 루비콘 강을 건넌 셈이다. 정치권에서 혹여 어느 한 쪽이 양보를 해 다른 쪽이 승자가 되더라도 승자 역시 얻는 게 없다는 분석을 내놓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민주당이 양보를 하더라도 청와대는 불통의 이미지에다 상대방을 벼랑 끝으로 내몰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독선과 정치력 부재라는 내상을 입게 된다”며 “민주당 역시 이번 게임에서 이기더라도 국민의 여론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 관철하려는 구태정치를 계속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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