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부동산 투기가 왜 문제인지 모르면 심리학을 공부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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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부동산 투기가 왜 문제인지 모르면 심리학을 공부해보라
  • 성동규 기자
  • 승인 2020.02.03 16: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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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성동규 기자] 흔히 부동산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은 ‘심리’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말은 보수성향 경제 전문가들이 부동산 규제 무용론을 제기할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한다. 더 오를 거라는 기대와 이를 통해 재산을 크게 불리고픈 욕망에 부동산 가격이 결정된다는 주장이다. 

극히 소수라고는 해도 ‘투기는 없다. 무조건 시장에 맡겨라’는 식의 극단적인 해법을 제시하는 전문가가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런데 이들이 놓치고 있는 게 있다. 심리가 형성되는 데 있어 가장 밑바탕에 깔린 그것. 우리가 느끼는 감정들이다.

언론에서 “강남 아파트가 몇 년 사이 십억이 올랐다”, “금수저가 부동산을 상속받아 아무 노력 없이 몇억을 벌었다” 등의 소식을 들은 당신의 감정은 어떤가.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박탈감, 좌절감, 위화감 등 부정적인 감정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재화된다.

주류경제학에선 이런 부정적인 감정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가난한 자들의 아둔한 질투 정도로 치부해 버리기 일쑤다. 부러우면 ‘노오오오오력’을 더 하라는 식이다. 심리학의 관점은 완전히 다르다. 사회의 안정성을 떨어뜨리고 경제적 비효율을 발생시키는 주요 원인으로 본다.

이런 분석은 여러 연구를 통해 입증됐다. 미국 하버드대 마이클 노턴 교수와 캐나다 토론토대 캐서린 드셀스 교수가 2016년 발표한 논문을 보면 불평등에 따른 부정적인 감정들이 개인의 의사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지는 지 확인할 수 있다.

두 교수는 한 대형 항공사의 비행 기록 수백만건을 분석해 일등석(퍼스트), 이등석(비즈니스), 삼등석(이코노미)으로 좌석이 구분된 여객기는 1000회 비행당 기내 난동이 평균 1.58건이었으나 등급 구분 없이 삼등석만 있을 때는 평균 0.14건에 불과하다는 결과를 도출해 냈다.

특히 기내 난동의 발생률은 삼등석 승객들이 앞서 탑승한 일등석과 이등석을 통과하는 구조에서 두 배 더 높았다. 일등석은 9.5시간 비행 지연과 같은 비효율을 발생시켰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애초 비행기를 이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빈곤층인가. 절대 아니다.

이는 부정적인 감정에 의한 위험한 의사결정은 개인의 소득과 연관이 없다는 걸 의미한다. 시게히로 오이시 콜롬비아대 심리학과 교수가 2011년 발표한 논문을 봐도 그렇다. 결론만 얘기하면 빈곤층이 불행한 이유는 점점 더 가난해져서 아니라 부자만 더 부유해졌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이 사는 지역의 구글 검색어를 보면 ‘복권’이나 ‘담보 대출’ 같은 위험한 옵션이 ‘저축’이나 ‘대출 상환’과 같은 안정적인 옵션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이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경향은 한국의 부동산 시장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부동산 시장은 그동안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원인인 동시에 위험한 도박판이었다. 이에 뒤따르는 폐해는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정부는 반드시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켜 불평등을 해결해야 한다. 이번에도 기회를 놓친다면 그릇된 심리를 영원히 변화시킬 수 없을 것 같다는 불안감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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