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금융수습원' 같은 금융감독원
상태바
[기자수첩] '금융수습원' 같은 금융감독원
  • 박수진 기자
  • 승인 2020.01.22 14: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매일일보 박수진 기자] '일이나 사람 따위가 잘못되지 아니하도록 살피어 단속함.' 사전은 감독(監督)을 이렇게 정의한다. 수습(收拾)은 '어수선한 사태를 거두어 바로잡음'이라고 적혀 있다.

금융감독원은 금융수습원에 가까워 보인다. 모든 금융사고를 미리 막을 수는 없겠지만, 예방할 수 있는 금융사고까지 못 막아서다. 금융사고를 예방하기는커녕 일이 터지고, 피해자가 생겨 여론이 들끓어야 뒷북 수습에 나서기 일쑤다.

1년 전 파생결합펀드(DLF)와 라임자산운용 사모펀드 사태로 수많은 피해자를 낳았다. 두 사태는 모두 불완전판매에서 비롯했다. 금감원은 두 사태 가운데 어느 하나도 제때 바로잡지 못했다. DLF 사태 제재심의는 결론을 못 내고 있고, 라임 사태는 점입가경이다. 피해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사태를 일으킨 핵심인물로 꼽히는 이종필 전 라임자산운용 부사장이 도주하는 바람에 수사는 시작조차 못했다.

금감원은 사태 수습조차 실패했다. 두 사태가 이렇게 커지도록 놓아둔 책임은 금감원에 있다. 뒤늦게야 금감원은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자보호대책을 내놓았고, 올해 들어서야 DLF와 헤지펀드 영업행태 점검에 나섰다.

금감원은 책임을 떠넘기기까지 한다. 해마다 금융권 미스터리 쇼핑으로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를 파악해왔다는 거다. DLF 불완전판매 혐의를 받는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을 포함한 주요 시중은행은 금융권 미스터리 쇼핑에서 가장 낮은 평가를 받았다. 금감원은 이런 결과를 해당 은행에 보냈고, 자율개선을 유도했다는 입장이다. 감독 책임을 다했지만, 해당 은행이 말을 안 들었다는 걸로 들린다.

라임 사태는 더 심각하다. 도망친 이종필 전 부사장은 내부직원에게 문제를 일으킨 모자펀드 구조에 대해 "금감원이 해도 괜찮다고 했다"고 이야기한 걸로 전해졌다. 이종필 전 부사장은 도주 전 100억원대 회삿돈도 챙겼다고 한다. 라임자산운용은 한계기업 전환사채를 사들였고, 무자본 인수합병(M&A) 세력과 짜고 주가를 조작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라임 사태 피해액은 1조원을 훌쩍 넘어설 걸로 보인다. 그에 비해 라임자산운용이 즉시 손해배상에 쓸 수 있는 자금은 200억원가량밖에 안 되는 걸로 알려졌다.

금융수습원이 아니라 '금융감독원'이었더라면 어땠을까. 금융사고 핵심인물이 도망치도록 손놓고 있지는 않았을 거다. DLF 사태도 라임 사태도 모두 인재이고, 금감원은 사후약방문식 대책에 앞서 반성문부터 써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