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네가 불행한 건 너 때문이 아니야!”… 2020년 성공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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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네가 불행한 건 너 때문이 아니야!”… 2020년 성공에 관하여
  • 성동규 기자
  • 승인 2020.01.07 14: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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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성동규 기자] 최근 TV를 보다 불쾌한 경험을 했다. 국내 한 자동차 회사의 광고 탓이었다. 그 광고에선 성공에 대한 의미를 나름의 방식으로 찾고 있었다. 하지만 정답은 비싼 차, 즉 돈으로 귀결됐다. 매우 노골적이었다. 천민자본주의적 태도를 애초에 숨길 생각이 없어 보였다.

물론 대부분의 상업 광고는 소비자에게 결핍을 느끼게 하도록 고안된다. 광고에 나오는 거의 모든 상품은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이어서다. 물질적 욕망을 자극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상품을 판매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당신이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면 성공한 삶이고 그렇지 못하면 실패했다고 낙인을 찍어버리는 방식은 용납하기 어렵다. 더 나아가 상품을 구매하지 못한 주변인을 광고에서 제시하는 성공의 기준에 순응하는 속물로 그린다. 이것은 사실상 모욕이다.

부의 기준에 따라 발생하는 차별과 불평등이 사회에 내면화된 것은 어쩌면 광고가 남긴 잔상에서 비롯됐을지 모른다. 이런 현상은 안타깝게도 우리나라가 유독 심한 편이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국가들이 몰려있는 스칸디나비아반도에는 한 가지 공통된 정서가 있다. 

겸손과 적절함을 칭송하는 얀테의 법칙(Jantelagen)이다. ‘당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말라. 남들보다 좋은 사람이라고 착각하지 말라’ 등의 평등정신을 담고 있다.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국민은 이에 따라 절대 자신의 소득이나 부를 타인에게 과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유함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에 대한 뿌리 깊은 혐오감을 가지고 있다. 또한, 부의 규모를 성공의 지표로 삼지도 않는다. 이는 이들 국가에 불평등이 존재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스웨덴의 경우 부유층과 빈곤층의 격차는 1990년대 이래로 계속 커지는 추세다.

소득 상위 20%는 하위 20%의 4배를 벌어들이고 있다. 완전한 복지국가로 알려졌으나 주거 양극화도 심각하다.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은 서울 부동산 시장보다 심각한 거품이 끼어있으며 붕괴 일보 직전의 위태로운 모습을 보인다. 

임대주택 들어가려면 최소 10년에서 길게는 20년 이상을 대기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높은 행복지수와 국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물질적으로 부자와 빈자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문화적으로는 차이가 없어서가 아닐까 싶다.

당장 주머니에 돈이 없어도 비싼 차나 아파트 따위를 살 수 없어도 서럽거나 불행하지 않은 삶이라면 이미 성공을 이룬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라고 변하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다. 2020년, 광고가 주입한 성공의 개념을 떨쳐낸다면 새해는 지난해보다 분명 더 성공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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