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증권사에 中企투자 강요하는 금융위
상태바
[기자수첩] 증권사에 中企투자 강요하는 금융위
  • 홍석경 기자
  • 승인 2020.01.02 15: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매일일보 홍석경 기자] 초대형 투자은행(IB)으로 불리는 큰 증권사는 주식시장 불황에도 돈을 제법 벌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중심으로 IB 영역에 공들여온 덕분으로, 2~3년 사이 증권가에서는 어닝 서프라이즈 행진이 이어졌다. 주식거래 중개(브로커리지)로 버는 수익은 줄었지만 IB로 밥그릇을 키울 수 있었다.

해가 바뀌면서 빨간불이 켜졌다. 금융위원회는 새해부터 증권사 PF를 자기자본 대비 100% 이내로 제한하기로 했다. 재무 건전성을 해칠 만큼 위험노출액이 커졌다고 보아서다. 실제로 일부 증권사가 국내외 부동산에 투자했다가 낭패를 보기도 했다.

금융위는 증권사 PF를 틀어쥐는 대신 모험자본 육성에 쓰는 돈에 대해서는 순자본비율(NCR) 규제를 완화하기로 했다. PF에 쏠린 자본을 중소ㆍ혁신기업으로 돌리라는 거다. 은행권 대출이 어려웠던 작은 신생기업에는 기쁜 소식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재무 건전성 면에서는 부동산 PF보다 중소ㆍ혁신기업 투자가 더 위험하다. 1조원대 환매중단 사태를 일으킨 라임자산운용이 대표적인 사례다. 수익성이나 건전성을 제대로 따지지 않은 채 부실기업에 투자했던 걸로 알려졌다. 자본시장까지 찾아와 돈을 빌린다면 '갈 데까지 간 기업'이라는 이야기도 흔하게 들을 수 있다.

금융위 주도로 만들어진 코스닥벤처펀드 역시 증권가에서는 골칫거리다. 포트폴리오를 살펴보면 관리종목과 투자환기 종목이 적지 않게 담겨 있다. 코스닥벤처펀드 수익률이 바닥을 기고, 설정액이 갈수록 줄어드는 이유다. 애초 코스닥에는 투자할 만한 우량주가 그다지 많지 않다. 외국인이나 기관도 그래서 코스닥을 외면해왔다. 

증권사나 자산운용사가 우량 기업과 자산에 투자해 수익을 내기는커녕 손실을 본다면 곤란하다. 돈이 될 법한 스타트업은 도리어 '타다 금지법' 같은 규제에 막혀 투자하기 어렵다. 정부 입장에서야 중기ㆍ혁신기업 육성 실적을 늘리고 싶겠지만, 증권사가 투자할 만한 곳은 많지 않다는 이야기다. 금융사에는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존재한다. 상장 증권사만 20여곳에 달하고, 여기에는 적지 않은 주주가 있다. 큰돈을 굴리는 자산운용사도 펀드 가입자를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한다.

관치금융이라는 지적에도 아랑곳없이 금융위는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를 떠밀고 있다. 금융위 발(發) '증권사 사태'와 '자산운용사 사태'가 걱정이다.

담당업무 : 보험·카드·저축은행·캐피탈 등 2금융권과 P2P 시장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읽을 만한 기사를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