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소 잃어야 외양간 고치는 금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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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소 잃어야 외양간 고치는 금융사
  • 박수진 기자
  • 승인 2019.12.2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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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박수진 기자] 금융권은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느라 바쁜 한 해를 보냈다. 일부 은행에서 판매한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는 대규모 원금손실로 논란을 낳았다. 금융권은 뒤늦게 해당상품 판매절차를 강화했다. 투자자에 대한 설명의무나 판매자료 보관의무가 깐깐해졌다. 금융당국도 사모펀드를 은행에서 팔 수 없게 했고, 일반투자자 요건을 강화했다.

금융권과 당국이 '소비자 신뢰회복'을 위해 진행한 조치를 보면, 그동안 당연히 해야 했던 일을 하지 않았다는 데 놀라울 뿐이다. 문제가 됐던 펀드 상품은 최소투자액만 1억원 이상으로 고액이다. 깐깐하게 판매가 이뤄졌을 것으로 생각됐지만 실상은 전혀 아니었다.

더욱 큰 사태가 발생하기 전에 당국과 금융권이 나섰으니, 이제라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싶지만 앞선 다른 사례를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1년 전 은행권은 시중ㆍ지방은행 전반에 퍼진 특혜채용 비리가 무더기로 드러났다. 여론이 악화되자 '은행고시'라 불리던 필기시험을 부활했다. 서류전형과 면접전형에 외부위원 참여를 의무화하는 모범규준을 마련했다. 임직원 추천제는 폐지했고, 성별이나 연령, 출신학교, 출신지와 같은 지원자 역량과 무관한 요소로 차별할 수 없게 했다. 내부감사와 내부통제 부서에 의한 채용절차 점검도 실시해야 한다.

KEB하나은행과 씨티은행, 경남은행은 1년 전 고객에게 부당하게 높은 금리를 부과한 사실이 적발되기도 했다. 대출자 소득정보를 실제보다 적거나 아예 없는 걸로 처리해 이자를 부풀렸다. 금리를 전산으로 자동 산정하고도 임의로 최고금리를 물린 곳도 있었다. 시장 상황이나 경기 변동에 따라 재산정해야 하는 가산금리를 그대로 유지해 더 높은 이자를 물리거나 합당한 근거 없이 인상한 사례도 적발됐다. 관련 피해액은 26억6900만원, 피해건수는 1만2279건에 달했다. 금융위원회는 금융감독원과 금융연구원, 은행권과 공동으로 '대출금리 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가산금리 체계를 바로잡느라 바빴다.

이처럼 '사후약방문'은 DLF로 시끄러웠던 올해만 일어났던 게 아니다. 내년에는 또 어떤 사건이 터질지 알 수 없고, 당연히 지킬 걸로 여겨온 일을 어긴 사실을 또다시 확인할지 모른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더라도 고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잃지 않아도 되는 소를 잃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경자년 새해에는 금융당국에도 금융권에도 '사전약방문'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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