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뉴욕 부동산 몰락과 조커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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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뉴욕 부동산 몰락과 조커의 탄생
  • 성동규 기자
  • 승인 2019.12.15 13: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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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성동규 기자] 영화 ‘조커’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이미 극장에서 내려간 지 오래돼 스포일러(매우 중요한 줄거리를 미리 알려주는 것)에 대한 부담이 덜해서다. 이 영화는 탄탄한 서사와 섬세한 연출력 그리고 조커 역의 호아킨 피닉스가 보여준 절정의 열연으로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이 영화를 ‘수작’의 반열에 올려놓는 결정적인 요소는 희대의 악당이자 배트맨의 숙적, 조커의 탄생을 통해 스크린 밖 세계의 계층구조와 빈부격차 문제를 신랄하게 풍자했다는 점이다. 더욱이 영화의 배경인 고담시는 허구가 아니다. 1970년대 후반 뉴욕의 모습을 재현해 더욱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이 비극은 도시개발계획에서 비롯됐다. 영화의 촬영지이기도 했던 브롱크스는 1940년대에만 하더라도 세계 금융산업 중심지인 맨해튼의 베드타운(직장과 거주지가 멀리 떨어져 있을 때 주거 기능을 담당하는 도시)이었다.

브롱크스가 쇠락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한 것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다. 경제적 부흥으로 자동차 공급률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뉴욕 외곽에서 맨해튼에 들어오는 도로가 잇달아 깔렸다. 문제는 고가 고속도로가 브롱크스 중앙을 관통했다는 것.

이런 탓에 브롱크스의 상권은 무너졌고 집값이 하락했다. 중산층 백인들은 서둘러 브롱크스를 떠났다. 너른 잔디밭과 차고가 있는 이층집, 우리가 미국의 중산층이 사는 집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교외의 주택가가 등장한 시기가 바로 이때다. 

당시 유색인종과 이민자들에게 친절하지 않은 건 금융기관도 마찬가지였다. 백인들 외에는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했다. 브롱크스에는 사회 소외계층만 남게 됐다. 집값 하락과 백인의 도시 이탈의 악순환이 반복됐다. 결국, 세수 급감으로 뉴욕의 재정위기가 찾아왔다. 

뉴욕 시장이 대통령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정치적 이점이 없다고 판단한 대통령은 이를 거절했다. 시가 각종 예산을 삭감하면서 경찰서와 소방서를 비롯한 관공서가 브롱크스에서 철수했다. 집값이 더 내려갈 것을 우려한 집주인들은 보험금이라도 탈 요량으로 자기 집에 불을 질렀다.

영화 속 대사 ‘고담 이즈 버닝’은 브롱크스의 상황을 함축적으로 나타낸다. 폐허가 돼버린 도시에서 극단적 박탈감을 느끼던 군중들은 영화와 같이 폭동을 일으킨다. 1977년 7월 13일 허드슨강 인근 변전소에 벼락이 떨어지며 일어난 대정전으로 뉴욕은 순식간에 무법천지로 변했다. 

전기가 복구되기 전 25시간 동안 1616곳의 상점이 약탈을 당했고 방화로 1037건의 화재가 일어났다. 하룻밤 새 각종 범죄로 체포된 사람만 3776명, 다친 경찰관도 550명이나 됐다. 물론 폭동은 정의가 상실된 폭력이다. 혁명과도 거리가 한참 멀다. 그렇더라도 이 광기에 눈을 돌려선 안 된다. 

병을 치료받을 수 있는 의료, 불친절하지 않은 이들에게 공격받지 않을 치안력, 갑작스레 해고를 당해도 다시 일어서도록 돕는 일자리 정책 등 아서 플렉이 조커가 되지 않도록 하는 데 필요한 것들은 그리 대단한 게 아니었다.

복지는 상품이 아닌 인권이라는 말을 곱씹어 봐야 할 이유다. 마지막으로 세상 모든 아서 플렉의 삶이 돈보다 더 가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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