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뀌지 않는 관치금융] 민간 금융사 인사에도 정부 입김…금융산업 경쟁력 망친다
상태바
[바뀌지 않는 관치금융] 민간 금융사 인사에도 정부 입김…금융산업 경쟁력 망친다
  • 이광표 기자
  • 승인 2019.12.10 15: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한금융, 차기 회장 인선 절차 두고 당국과 마찰
하나·우리금융도 사외이사 압박 및 인사개입 우려
여권 인사마저 "이사회와 주주 판단에 맡겨야" 비판
금융당국이 연임에 제동을 건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왼쪽)과 올 초 당국의 압박 속에 3연임을 포기했던 함영주 전 KEB하나은행장. 사진/각 사
금융당국이 연임에 제동을 건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왼쪽)과 올 초 당국의 압박 속에 3연임을 포기했던 함영주 전 KEB하나은행장. 사진/각 사


[매일일보 이광표 기자] '관치금융'의 그림자가 민간 금융사에도 드리우고 있다. 금융권 수장들의 인사 시즌이 시작되면서 절차나 금융당국의 개입, ‘낙하산 논란’ 등 잡음이 잇달아 새어나오고 있다. 

신한금융그룹은 차기 회장 선임 절차를 두고 당국과 마찰 조짐이고, 하나금융그룹은 이사회 교체를 두고 당국의 눈초리를 받고 있다. 우리금융그룹 역시 내년 인선 과정에서 당국의 개입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각에선 민간 금융사까지 정부와 당국이 과도한 인사개입에 나서는 것을 두고 금융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구태한 행위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금융그룹은 조용병 회장의 임기 종료가 다가오는 가운데 최근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가 본격 가동시켰다. 조 회장의 연임에 무게 실리고 있지만 금융감독원이 '법률적 리스크'를 들어 우려의 뜻을 전하기로 하면서 ‘관치 금융’ 논란이 재현되고 있다.

앞서 신한금융 회추위는 지난 26일 첫 회의를 갖고 차기 회장 선임 과정 전체를 공개하지 않기로 의견을 모은 채 절차를 서두르고 있다.

다만 금융당국의 의중이 변수로 등장하면서 논란이 불거질 조짐이다. 당국은 올 초에도 재판을 진행 중이던 함영주 전 KEB하나은행장이 3연임에 시동을 걸자 법률적 리스크를 들어 사외이사에게 우려의 의중을 전달해 함 전 행장의 연임을 무산시킨 바 있다. 당시 함 전 행장은 재판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당국의 압박에 연임을 포기했다. 
 
여기에 은성수 금융위원장도 지난달 29일 신한금융의 차기 회장 선임 절차와 관련해 “투명한 절차에 따라 선임하는 지 보는 것은 당국의 의무”라고 언급하며 당국과의 갈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하나금융그룹의 경우 김정태 회장의 임기가 2021년 3월까지로 당장 인사개입과 관련된 논란은 없다. 하지만 8명의 사외이사진 모두가 조만간 공식 임기 종료를 맞게 되면서 미묘한 긴장감이 감돈다.

내부 규정 상 하나금융 사외이사들에겐 차기 회장 후보를 선택할 권한이 자동적으로 주어진다. 일단 김정태 회장은 더 이상 연임엔 도전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이 때문에 하나금융은 늦어도 내년 말에는 본격적인 신임 회장 선정 작업에 들어가야 하는 입장이다. 새로운 이사진이 어떻게 구성돼느냐에 따라 차기 회장의 윤곽도 일찌감치 드러날 수 있다. 당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최근들어 당국이 금융그룹 회장 교체를 두고 사외이사들을 향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는 점이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거취도 당국의 움직임이 변수가 될 전망이다. 손 회장은 올 초 우리은행이 지주 체제로 바뀌면서 우리은행장을 겸임하고 있다. 지주 회장 임기는 내년 3월 주주총회까지이고 우리은행장 임기는 내년 연말까지다.

손 회장은 경영성과 면에서선 결점을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금융은 지주 재출범 원년인 올 3분기까지 누적 당기순이익(잠정) 1조8061억원을 냈다. 실적 외에도 손 회장이 4년 만에 지주사 체제를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우리카드‧우리종합금융을 자회사로 편입하고, 동양·ABL자산운용과 국제자산신탁 등을 인수하며 금융지주사로서 기틀을 잡는 데 능력을 발휘했다. 당연히 손 회장의 연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그러나 당국이 최근 벌어진 DLF 판매 논란을 빌미로 잡을 수 있다. 여기에 정부가 예금보험공사를 통해 우리금융지주 지분 18.32%를 들고 있다는 점도 인사 개입 가능성을 배제 못하는 이유다. 일각에선 정부가 우리금융지주의 지배구조에 관여할 수 있는 여건인만큼 관료출신의 외부인사들이 호시탐탐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소문도 나돈다.

민간 금융사에 대한 정부 당국의 인사개입 움직임이 가시화 되자 금융권은 물론 정치권 내에서도 우려감을 표시하고 있다.

이날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최운열 의원은 "올해 말부터 내년 초까지 예정된 금융권 CEO 인사 과정에서 관치 내지는 낙하산 논란이 없도록 정부와 감독당국 모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 의원은 "미국 등 금융선진국에서 금융회사 CEO는 장기적인 경영성과를 토대로 업적을 평가하는 문화가 정착돼 있고 금융회사 경영진에 대한 선임과 재신임은 오롯이 각 회사의 이사회와 주주들의 판단에 맡겨져 있다"고 했다.

그는 "국내의 경우 금융사 CEO에게 부여되는 임기가 애당초 매우 짧은 데다가 임기 만료가 임박해 올 때마다 낙하산 논란 내지는 감독당국의 영향력 행사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며 "금융사들이 장기 계획하에 경영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기 어려워져 결국 국내 금융사들의 경쟁력을 높이는데 걸림돌이 돼왔다"고 했다. 여권 인사마저도 현 정권의 '관치금융' 논란을 우려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한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민간 금융사들에게 과도한 공공성 잣대를 들이대는 한 은행은 글로벌 금융그룹으로 나가지 못할 것"이라며 "정관계의 외풍에서도 자유롭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게 해주는 게 금융당국의 책무인데 현 정부가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꼬집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