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대놓고 5년째 예산안 불법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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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대놓고 5년째 예산안 불법이라니
  • 김나현 기자
  • 승인 2019.12.03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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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김나현 기자] 내년도 정부 예산안을 처리해야 하는 법정 처리시한인 12월 2일이 지났지만, 이맘때쯤 나오는 국회의 고질병이 또다시 나타났다. 역대 최대인 513조 5000억원에 달하는 내년도 예산안 처리는 이번에도 법정 시한을 넘겨 지각처리를 면치 못하게 됐다.

이는 명백한 불법이라 비판받아도 할 말이 없다. 현행 헌법은 국회에 예산안 심의·의결권을 부여하면서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이를(예산안을) 의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회계연도 개시일은 이듬해 1월 1일로, 계산하면 12월 2일이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이다. 국회에 권한을 주면서 지켜야 할 의무를 부여했지만 국회 스스로 헌법을 어기고 있는 셈이다.

국회가 예산안 처리 법정 시한을 지킨 것은 국회선진화법이 처음 도입된 2014년으로, 당시 여야는 2002년 이후 12년 만에 예산안을 법정시한 내 처리했다. ‘예산안 자동부의제도’를 도입해 기한 내 심사를 마치지 못하면 본회의에 자동으로 상정되도록 한 덕분이다. 그러나 국회는 이후 2015년부터 해마다 예산안을 지각처리 해왔고, 올해도 어김없이 이 같은 행태를 반복해 벌써 5번째 불법을 저질렀다. 이번에도 정쟁으로 시간을 한참 허비해 아직 예산안은 1차 감액 심사에 그쳤고 특히 증액심사의 경우 시작도 하지 못한 상태다. 내년도 국민의 살림살이를 책임질 예산안이 막판 ‘날림심사’ ‘졸속심사’를 거칠 가능성도 커졌다. 국회의 직무유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년 실세의원이나 예결위 소속 의원들을 중심으로 수조원에 달하는 나랏돈을 챙기는 지역구 예산 챙기기는 총선을 코앞에 두고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

명백한 위법인데도 자꾸 되풀이되다보니 이미 관행으로 굳어진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든다. 이 글을 쓰고 있는 기자를 포함한 직장인, 학생, 취업준비생 등 우리나라의 평범한 모든 국민들은 마감 시한에 맞닥뜨리면 이를 지켜야 한다. 만약 자신이 업무나 과제 마감일 혹은 자기소개서 제출기한을 지키지 못한다면 어떠한 불이익이든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국회에서는 이러한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매번 반복되다보니 아무리 국회 내부에서 스스로 ‘특권’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와도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석연치 않은 것이다. 오죽하면 일각에서는 이러한 국회의 행태에 대해 ‘패널티’를 둬 강제성을 두어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상황이 이렇지만 여야는 예산안 법정시한이었던 2일 필리버스터 정국 속 협상은 고사하고 서로의 탓으로만 돌리기 바빴다. “더불어민주당은 내년도 예산안마저 정치적 공세수단으로 이용하여 심의를 거부했다” “그동안 이러저런 핑계로 예산 심사의 발목을 잡은 것은 자유한국당이다”

선거법, 공수처법 등 각종 법안이 복잡하게 얽힌 상황에서 예산안에 대해서는 필리버스터를 신청할 수 없다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국회가 더 이상 직무유기와 적폐행위를 ‘관행’으로 만들지 않도록 스스로 자성의 계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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