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음식의 맛에 대한 잡설(雜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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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음식의 맛에 대한 잡설(雜說)
  • 김휘규 공학박사
  • 승인 2019.11.21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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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휘규 공학박사(기술경영학)
김휘규 공학박사(기술경영학)

최근 맛집 탐방, 먹방, 요리 프로그램들이 유독 인기를 끌고 있다. 단순히 사회적, 경제적 성장에 따른 일시적인 트렌드일 수도 있지만 왠지 사람들의 먹는 것에 대한 관심과 인기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 같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근원적인 인간의 욕망에 대한 갈망은 더욱 강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로마의 귀족들은 미식을 탐하기 위해 먹은 음식을 토해가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고 노력했다. 이제는 시대가 변해 귀족계급이 아니더라도 미식을 탐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개인적으로 유명한 맛집을 찾아다니면서 음식을 먹고 분석하고, 논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일반인들도 맛과 음식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많이 늘어난 듯하다. 게다가 음식 칼럼리스트, 요리연구가, 최근에는 심지어 음식 관련 만화를 그린 유명한 화백까지 방송에서 음식 탐방기행 등과 같은 각종 식음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물론 일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어떤 측면에서는 한국 식문화 발전의 또 다른 양상이라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음식에 대한 관심과 평가들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뭔가 찜찜하고 미심적은 부분이 있다. 그건 음식의 맛에 대한 평가가 너무 획일적이라는 부분이다. 특히 음식 칼럼리스트, 요리연구가와 같은 전문가들은 ‘식재료 본연의 맛’이라는 부분을 크게 강조하는 듯하다. 아무래도 식음 분야의 전문가들이 하는 말이니, 수긍할 만도 한데 개인적으로 가끔은 반발감이 생긴다. 예를 들면 ‘회를 초장에 찍어 먹으면 회의 맛을 느낄 수 없다’거나 ‘양념이 과해서 생선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없다’는 등의 평가들이 그렇다.

그 식재료 본연의 맛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본연(本然)이란 단어는 사전적으로 사물이나 현상이 처음부터 가지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전문가들이 말하는 본연의 맛이란 재료가 가진 고유한 맛을 의미하는 것 같다. 이런 관점에서 위의 평가를 판단해 보면 생선회를 초장에 찍어 먹는 경우, 초장의 맛이 강해서 생선회가 가지는 고소하고 기름진 맛을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는 평가가 되는 것 같다. 정말 그럴 듯 하고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런데도 왜 이런 전문가들의 평가에 약간은 거부감이 드는 것일까.

얼마 전 오랜만에 친구와 함께 참치를 먹을 기회가 있었다. 기름진 참치를 참기름 소금장에 찍고 약간 거칠게 갈린 생와사비와 무순을 살짝 얹어 먹으니 너무나도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친구는 참치를 초장에다 찍어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너무나도 생뚱맞은 친구의 식성에 ‘초장에 찍어 먹는 것을 보니 참치의 담백하고 고소한 맛을 제대로 모르는 구나’라고 놀렸다. 그런데 친구가 비웃으며 한마디 했다. ‘고소하고 담백한 광어회를 다진 고추 및 마늘이 들어간 쌈장에 찍어먹는 녀석에게 이런 평가를 들으니 우습다’라고 말이다.

허물없는 사이다 보니 서로 웃고 말았지만, 그 이후로 과연 내가 본연의 맛이란 것을 좋아하는지 궁금해졌다. 아니 실제로 본연의 맛이 무엇인지는 알고 이야기 하는지 조차 의아했다. 하긴 음식이란 것이 사실은 뇌가 인식하고 있는 기억의 잔재일 뿐인데, 그것이 마치 진리인 양 호도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누가 ‘이 음식은 이렇게 먹어야 한다’거나 ‘이 음식의 맛은 이래야 한다’고 정의 할 수 있단 밀인가. 그냥 음식은 음식일 뿐이고 매번 먹는 음식이 질려서 혹은 새로운 문화나 환경에 따라서 변화하는 것이 식문화인데 말이다.

예를 들어서 치킨이라는 음식을 생각해 보자. 서구에서 먹던 튀긴 닭을 알게 된 우리나라 사람들은 언제부터인가 매운 양념도 바르고, 치즈가루도 뿌리고 간장양념도 발라 먹게 되었다. 그뿐이랴, 길게 썬 파와 곁들여 파닭도 만들고 간 마늘소스를 잔뜩 끼얹은 마늘닭도 있다. 이런 우리의 치킨을 보고, ‘어허 치킨에 이상한 소스를 발라 먹다니 고소하고 담백한 치킨 본연의 맛도 모르는 사람들이구나’라고 비판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저 후라이드 치킨을 우리의 식생활에 맞게 변형시킨 것뿐인데 말이다.

우리가 아는 비빔밥도 그렇다. 비빔밥에 들어가는 재료들을 따로 먹으면 그냥 그렇고 특징이 없다. 고추장과 함께 재료들을 뒤섞으면 제대로 맛이 난다. 기존 재료들이 가진 것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맛이 난다. 누군가 고추장과 다른 재료들이 비빔밥에 들어간 호박나물의 담백한 맛을 저해하고 있다고 한다면 어떨까. 부대찌개는 어떠한가. 햄에 김치, 통조림콩, 심지어 베이컨까지 말 그대로 잡탕이지만 부대찌개만의 고유한 맛이 있고 우린 그 맛을 즐길 뿐이다. 본연의 맛이란 것이 꼭 재료 그 자체의 맛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음식은 반드시 이렇게 먹어야 한다’거나 ‘이런 맛을 느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이자 강요에 불과한 것이다. 음식의 맛은 즐기는 자의 몫이지 누군가 강요할 일이 아닌 것 같다. 맛이란 것은 뇌에 학습되고 인지된 기억일 뿐, 학습과 인지방법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참치를 초장에 찍어먹던 짜장면에 올려먹던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불변하는 진리나 사상, 사회제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 반드시 이루어 내야 할 이상향도, 반드시 제거해야 할 적폐란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강요한다는 것은 항상 주의할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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