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반세기 만에 ‘부동산 공화국’에서 벗어날 기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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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반세기 만에 ‘부동산 공화국’에서 벗어날 기회가 왔다
  • 성동규 기자
  • 승인 2019.11.20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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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성동규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19일 서울 상암동 MBC 미디어센터에서 열린 ‘2019 국민과의 대화’에서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언했다. 문 대통령은 “역대 정부와 달리 부동산을 경기부양에 활용할 생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실제 우리의 역사가 그렇다. 본격적인 부동산 투기는 1966년 한남대교 착공으로 강남 땅값이 급등하면서 시작됐다. 이듬해 부동산투기억제 특별조치법으로 잠잠해지는 듯했으나 1968년 경부고속도로 착공으로 다시 투기 바람이 불었다.

이른바 ‘복부인’이 등장한 1970년대에는 강남 아파트가 부동산 투기의 상징이 됐다. 부마민주항쟁과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사회·정치적 격변기던 1980년대 초에는 강남 개포동 일대 자연녹지 241만평의 땅을 개발해 경기부양책으로 삼았다.

1982년 이철희-장영자 어음 사기 사건도 부동산 투기를 가속하는 계기가 됐다. 이들은 자금난을 겪는 기업들에 자금지원 대가로 2배에서 최고 9배짜리 어음을 받아 이를 사채시장에 유통해 돈을 착복했다.

이 사건으로 정계·경제계는 물론 사회 각 분야에 엄청난 파문이 몰아쳤다. 당시 철강업계 2위인 일신제강과 도급 순위 8위였던 공영토건은 부도가 났다. 어음 등 금융거래에 대한 불신이 확산하면서 시중 자금 흐름이 마비돼 경제활동이 크게 위축됐다.

금융시장이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자 돈은 부동산에 몰려들었다. 이런 탓에 집값과 전셋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정부는 분당과 일산 등 수도권 지역에 5개 신도시를 건설, 주택 대란을 해결하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그 이후로 부동산 개발에 따른 정경유착과 부동산 불패 증후군, 주거불안, 계층갈등 등 무수한 부작용이 반복됐다. 지난 50여 년간 한국의 부동산은 시장의 논리대로 움직인 게 아니다. 정부가 투기판을 열어준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는 반세기 만에 대한민국이 ‘부동산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어던질 기회를 맞이했다.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려 할수록 투기꾼들과 이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세력의 반격은 거셀 것이다. 정부의 의지가 진정으로 확고하다면 이를 피해선 안 된다.

투기꾼들과 필사적으로 싸워야 한다. 이에 보조를 맞춰 부동산 공급자들의 생각과 부동산 시장을 바라보는 시장참여자들의 관점도 조금씩 바뀌어야 할 때다. 그동안 투기에 눈이 멀어 우리가 부동산 안정에 얼마나 큰 장애 역할을 했는지도 생각해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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