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 없는 낙하산 인사, 때론 이득이지만 불협화음 등 문제도 빈번
전문성 결여, 예산낭비, 개인 활동비 증액, 사업비 전용 등 문제 다양
여직원 감금 및 폭행 시도 등 문제 있어도 정부 눈치 보느라 전전긍긍
[매일일보 문수호 기자] 정부 고위 관료직의 퇴직과 함께 산하기관으로의 재취업이 여전히 성행하는 가운데, 이에 대한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고위직 공무원의 산하기관으로의 재취업은 사실상 과거부터 이어져온 관행 또는 관습에 가깝다. 협회의 경우 같은 업종의 이해관계가 같은 기업이 담합 등의 문제를 피해 업계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구성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경우 국토부나 산업부 등 관련 정부부처의 승인을 얻어야 하는데 협회가 기업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곳이다 보니, 과거부터 정부와의 소통을 위해 정부 인사를 협회 내 고위직에 모셔오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 돼버렸다.
이 같은 이유로 현재도 협회 등 정부부처 산하기관에는 부회장 등 주요 요직에 정부인사가 낙하산 인사로 꽂히기 마련이다. 이런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대한건설협회, 대한건축사협회, 한국표준협회, 한국철강협회 등 주요 협회의 부회장은 전부 관련 부처의 퇴직공직자로 구성된다.
국토부 산하에만 8개의 공기업과 5개 준정부기관, 10개의 공공기관, 30개의 협회 및 단체가 소속돼 있다. 각 정부부처의 산하기관이 대부분 퇴직 고위 관료의 재취업에 활용되는 셈이다.
KAI나 발전사 등 공적 성향이 짙은 기관에 낙하산 인사가 끊이지 않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다만 산하기관에서는 이러한 낙하산 인사를 오히려 바라는 경우가 많다. 낙하산 인사가 논란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현재 구조에서는 불가피하게 필요한 존재로 여겨진다.
이유는 정부로부터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서다. 정부 인사가 내려와 정부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만, 불이익만 당하지 않아도 이익이라는 판단이다. 실제 한 협회는 정부부처로부터 경고성 조치로 2년 가까이 관련 회의에 참석조차 못한 사례도 있었다.
협회의 존속 이유가 회원사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인 만큼 정부부처의 회의에 참석해 의견을 전달해야 하는데 이러한 협회의 기본 구실조차 못하게 막아버리기 때문에 힘 있는 정부 인사를 받고 싶어 한다.
KAI의 경우 6번의 대표 인사에서 5번이 정부 낙하산 인사가 차지했을 만큼 논란이 제기되고 있지만, 정작 내부에서는 낙하산 인사를 반긴다. 이유는 방산 산업 특성상 대부분의 수주를 정부로부터 받고 있는 만큼, 정부 인사가 기업 이익에 보탬이 될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실제 낙하산 인사가 도움이 된 사례도 있다. 한국표준협회의 경우 한국 내 모든 표준을 협회를 통해서 받아야 하는 인증사업을 고안해 낸 이가 바로 이러한 정부 인사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디어에 창안한 신사업을 통해 협회 규모를 대대적으로 확장시킨 사례로 꼽힌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례도 많다. 해당 공기업이나 협회가 추진하는 사업에 대해 전혀 이해관계가 없는 이의 경우 오히려 사업 추진에 장애가 되는 경우도 있다. 특히 한정된 자원 내에서 사업비 전용 등 문제를 일으킨 곳도 있었다.
산하기관 관계자가 꼽은 대표적인 정부 낙하산 인사의 문제점은 ▲전문성 결여 ▲불필요한 예산 낭비와 부담에 따른 사업 축소 ▲능력이나 인성에 관계없는 임기 보장에 따른 문제 발생 ▲예산편성에 임의적 관여(자신의 활동비 증액 또는 차량 및 기사요구 등) ▲단체, 기관 목적에 맞지 않는 활동비 지출 ▲실질적 대외 활동 등 없이 조직 장악 및 예산 전용에만 혈안 ▲정부 눈치 보기 등이 있다.
한 건축자재 관련 협회 관계자는 “정부 산하기관들은 자질이나 인성에 대한 검증 없이 정부 인사를 받아야 한다. 문제 발생 시 정부 관계 기관과의 관계를 고려해 임의로 퇴직이나 처벌이 어려운 것도 문제다. 사실상 안하무인 전횡을 일삼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며, “어느 단체의 경우 여직원 감금 및 폭행 시도 사례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아무런 처벌 없이 현직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경우 직원들은 임기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 고충이 크다”고 실상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