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文정부의 ‘가지 않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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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文정부의 ‘가지 않은 길’
  • 송병형 기자
  • 승인 2019.11.11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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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형 정경부장
송병형 정경부장

문재인 정부가 출범 초 진보의 성장전략이라며 야심차게 내놓았던 소득주도성장이 임기 절반을 지나는 동안 누더기가 됐지만 여전히 청와대는 고집불통이다.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그 자체로 실패’라는 이유에서다. ‘소득주도성장은 성장 전략이 아닌 복지확대에 불과할 뿐이었다’고 솔직히 인정하는 게 그렇게 힘든 것일까.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반환점을 계기로 남은 2년 반 경제정책 방향을 설명하면서 “당장 어렵다고 해서 낡은 과거의 모델로 되돌아가는 것은 실패를 자초하는 일”이라고 했다. 또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은 반드시 가야할 길”이라고도 했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김 실장은 지난 6월 정책실장 임명 발표 직후에도 “과거에 안주하고 회귀하고자 한다면 실패를 자초할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의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이란 무엇인가. 김 실장은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 등 3대 축으로 국민이 모두 잘사는 사람 중심 경제의 길을 가고자 한다”고 했다.

그러나 소득주도성장을 하겠다며 밀어붙인 최저임금인상과 주52시간제는 부작용만 낳았을 뿐이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원성이 빗발치자 정부 스스로 과오를 인정하고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을 최소화했다. 워라밸을 외치던 대통령은 노동계를 향해 탄력근무제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대놓고 말할 정도다. 애초 임금을 올린다고 경기가 살아난다는 주장 자체가 허언이었다. 경제학자들은 한국과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에선 ‘필립스 곡선’이 작동하지 않는다고 말해왔다.

그렇다고 혁신성장이 무슨 새로운 성장 모델인 것도 아니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나 다를 게 없다. 오히려 현장에서는 창조경제 때보다 어렵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나마 대기업발 혁신경제는 절박감이라도 느껴진다. 우후죽순 마냥 솟아난 벤처기업의 명함을 보면 세금 도둑인지 혁신 벤처인지 헷갈릴 정도다.

공정경제는 애당초 새로운 패러다임도 아니다.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도록 감시하고 개입하는 것은 정부 본연의 임무다. 그런데 이것도 요새는 의문이다. 앞에서는 대기업의 불공정 행위를 범죄시하면서 정작 정권의 실세라던 조국 씨는 민정수석 시절 이면에서 사모펀드로 공정경제 질서를 어지럽힌 의혹에 휩싸인 상태다. 또 ‘태양광 복마전’이란 말이 무성할 정도니 정권이 바뀐 뒤 과연 문재인 정부가 공정경제를 외칠 자격이 있었는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 실장은 “성과가 확인된 정책은 더욱 강화하고 시장의 수용도를 넘는 정책을 보완하면서 다이나믹 코리아의 부활을 위한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겠다”고 한다. 과연 성과가 확인된 정책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시장의 수용도를 넘는 정책은 과연 보완하는 수준인가 아니면 사실상 반성하는 수준인가. 그런데도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말할 수 있나.

어쩌면 문재인 정부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이면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먼 훗날 나는 어디선가 한숨 지으며 이렇게 말하겠지. 숲속에 두 갈래 길이 나 있었다고, 그리고 나는 사람들이 덜 지나간 길을 택하였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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