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바람이 위로하고 달빛이 치유하는 '나의 제주 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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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바람이 위로하고 달빛이 치유하는 '나의 제주 돌집'
  • 김종혁 기자
  • 승인 2019.11.06 08: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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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냄새 가득한 제주생활에 대한 애정 넘치는 에세이
“STONE HOUSE ON JEJU ISLAND” 한국어판

[매일일보 김종혁 기자] 제주는 아름다움과 아픔이 공존하는 섬이다. 화산 폭발로 형성된 독특한 자연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지만 매우 척박한 땅을 품고 있으며, 평화로운 어촌마을의 이면에는 한국 근대사의 가슴 아픈 상처가 남아 있다.

25년 전 어린 아들 토미를 갑작스럽게 떠나 보내고 마음의 안식처를 찾아 세계 곳곳을 돌아다녔던 브렌다 백 선우와 그의 남편 잰 백 선우는 유독 이 섬에 끌렸고, 몇 년을 오간 끝에 마침내 제주 애월에 집을 짓기로 결심한다.
<바람이 위로하고 달빛이 치유하는 나의 제주 돌집>은 낯선 땅에 집을 짓고 이주하는 과정을 기록한 정착기이자 건축 일기이며, 인생의 황혼기에 새로운 삶을 꿈꾸며 도전하는 모험담이다.  자신을 닮은 혹은 자신이 닮고 싶은 섬 제주와 제주사람들을 향한 저자의 열렬한 사랑 고백이기도 하다. 제주 생활을 널리 알리겠다는 마음으로 지난해 가을 먼저 펴냈던 “Stone House on Jeju Island”의 한국어판이다.

제주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이 그렇듯 브렌다도 처음에는 아름다운 풍광에 먼저 마음을 빼앗겼다. 섬 한 가운데 우뚝 솟은 한라산, 곳곳에 솟아오른 크고 작은 오름, 섬의 둘레를 따라 난 올레길, 전통적인 어촌마을 등…… 그러나 무엇보다도 강렬하게 그녀를 사로잡은 것은 해녀였다.

특별한 장비도 없이 바다에 들어가 해산물을 채취하며 살아온 이들은 대부분 60대가 넘어서도 여전히 물질을 하고 가족과 이웃을 돌보며 살아간다. 혹독한 자연환경을 극복하는 해녀들의 거칠고 억센 에너지, 상실과 슬픔의 세월을 견뎌온 그들의 강인한 삶을 마주할 때, 브렌다는 비로소 본인의 불행과 슬픔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바다와 바람과 해녀와 이 섬의 슬픈 역사는 이 재미교포 3세 노인에게 위로이자 치유로 다가왔다.

생면부지의 땅이지만 “고향에 온 듯” 평온함을 느낀 이유다. 따지고 보면 작가의 조부가 1903년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로 이민하면서 한반도를 떠난 지 120여년이 지나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 셈이다.

이 책은 저자가 제주에 오게 된 배경, 집을 짓는 과정, 정착과 적응기 등으로 구성돼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와 뉴저지의 대도시와 교외 지역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살아온 노부부가 말도 통하지 않고, 낯설고 먼 아시아의 서남해상 한 섬에 집을 짓겠다고 고군분투하며,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벌어지는 일들이 소소한 웃음을 자아낸다.

제주도는 최근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대안적인 삶을 꿈꾸는 젊은이들과 외국인의 이주가 늘면서 현대적, 서구적, 예술적인 건축물이 곳곳에 터를 잡아가고 있다. 그러나 부부는 친환경적이면서도 한국과 제주도의 문화적 전통을 담은 집을 짓고 싶었기에 버려진 돌집 한 채를 구해 개조하기로 마음먹었다.

문화적 관습 차이와 자연재해 등 우여곡절을 겪으며 5개월로 예상했던 건축기간이 세 배 가까이 늘어났지만, 재료부터 디자인까지 삶에 대한 그들의 철학을 고스란히 구현해낸 멋진 안식처를 결국 완성해낸다.

제주에서의 하루하루는 미국에서의 삶과 사뭇 다르다. 이웃에서 직접 재배한 채소를 캐먹고, 때로는 대문을 열어 놓고 지내며, 웬만하면 1~2km 정도는 두 발로 걷는다.

닷새마다 열리는 재래시장에서 쇼핑을 하는 동시에 새로운 단어들을 배우며, 모진 비바람이 주는 일상의 불편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법을 체득하고, 꾸밈없는 얼굴의 이웃들과 몸짓, 손짓으로 정을 나누고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그에게는 낯설고 새로운 것 투성이지만, 불안이나 걱정이 아니라 흥미로운 발견처럼 다가온다.

"한 친구는 제주도에선 모르는 사람들이 집에 불쑥 찾아오는 경우가 있으니 놀라지 말라고 귀띔해 주기도 했어요. 찾아와서 흔히들 하는 말은 놀랍게도 “집 좀 구경해도 될까요?”입니다.

마을 주민들은 대문을 잠그지 않고 외출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택배 기사는 택배 상자를 집 안까지 가지고 들어와서는 놓고 가기도 합니다. 대담한 방문객들은 창문을 똑똑 두드리고는 “계세요?”하고 소리 높여요. 우리 부부는 밤에만 문을 잠그는데 미국에 있을 때보다 오히려 더 안전한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요?" 

이 책은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담은 에세이지만, 제주도라는 섬을 낯설게 여기는 이들을 위한 친절한 안내서이기도 하다. 이방인으로서 1950-60년대 제주에 목장과 봉제공장을 세워 지역 경제와 사회복지에 힘쓴 아일랜드인 맥글린치 신부와 로자리 수녀의 이야기를 비롯해 ‘이방인 브렌다’가 이웃을 통해 보고 듣고 느낀 제주의 지리, 역사, 풍속들도 흥미롭게 전해진다.

작가 브렌다 백 선우 (Brenda Paik Sunoo)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현재는 제주도에 살고 있는 재미교포 3세이다. UCLA에서 사회학을 전공했고, 앤티오크 대학교에서 문예창작 석사과정을 밟았다. 사진작가로 활동하기 전에는 <오렌지 카운티 리지스터>, 한국일보 미주 영문판 <코리아 타임스> 등의 언론 매체에서 기자, 편집자 등으로 근무했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수 차례 총 7개월에 거쳐 다수의 해녀들을 인터뷰하고 취재했으며, 그 결과를 모아 <Moon Tides–Jeju Island Grannies of the Sea 물때–제주의 바다 할망, 2011, Seoul Selection>이라는 영문 도서를 출간했다. 이 책은 ‘제주 해녀’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을 받는다.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지 않을 때는 혼합재료를 이용한 미술 창작에 매진하며, 지역 청소년들에게 외국어, 작법 등을 가르치는 등 나눔의 행복을 만끽하고 있다.

 


좌우명 : 아무리 얇게 저며도 양면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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