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왕산 허위선생 순국 111주기 향사 봉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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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왕산 허위선생 순국 111주기 향사 봉행
  • 이정수 기자
  • 승인 2019.10.22 08: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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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도 창의군 총대장으로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
구미시는 왕산 허위선생 순국 111주기를 맞아 21일 오전 11시 (사)왕산기념사업회 주관으로 경인사에서 추모제(향사)를 봉행하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구미시는 왕산 허위선생 순국 111주기를 맞아 21일 오전 11시 (사)왕산기념사업회 주관으로 경인사에서 추모제(향사)를 봉행하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매일일보 이정수 기자] 구미시는 왕산 허위선생 순국 111주기를 맞아 21일 오전 11시 (사)왕산기념사업회 주관으로 경인사에서 추모제(향사)를 봉행했다.

추모제(향사)는 장세용 구미시장이 초헌관, 김태근 구미시의회 의장이 아헌관, 윤창욱 도의원이 종헌관으로 참여했고, 왕산선생의 손자 허경성 부부, 왕산가 후손 허벽 부부, 기관단체장 및 기념사업회 임원, 주민 등 200여명이 자리를 함께 했다.

특히 이번 향사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근조화환을 보내와 선생의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과 희생정신을 기리며, 추모의 의미를 더 했다.

왕산 허위선생은(1855. 4. 2. ~ 1908. 10. 21.) 구미 임은리 출신으로 평리원 재판장(대법원장), 비서원 승(대통령비서실장), 의정부 참찬 등의 관직에 재직했다. 선생은 일본의 침략으로 국권을 강탈당하자 의병을 모집하여 13도창의군을 창설하였고 의병총대장으로 1907년 일본의 심장부인 조선통감부를 공격하기 위해 선발대 300명으로 ‘서울진공작전’을 진두지휘 했다.

이를 기리고자 서울시는 왕산선생의 13도창의군 선발대가 조선통감부를 치기 위해 진군한 청량리에서 동대문간의 도로를 ‘왕산로’로 명명했다.

선생은 1908년 일본헌병에 의해 체포되어 투옥, 같은 해 (음) 9월 27일 서대문형무소에서 교수형에 처해 순국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재산과 높은 관직을 버리고 독립운동에 투신한 공로를 인정하여 선생에게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대한민국장 수훈자는 민간인으로서는 왕산 허위, 안중근 의사 등을 비롯한 28명뿐이다.

왕산 선생의 일가도 항일운동에 뛰어들었는데, 선생의 형제(허훈, 허겸)는 모두 의병장을 지냈고, 아들(허학, 허영, 허준, 허국) 및 4촌 형제 등 14명도 의병투쟁에 적극 나섰으며, 독립운동기지 건설 참여, 군자금 모금, 독립운동세력 후원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우당 이회영선생 가문(서울), 석주 이상룡 선생 가문(안동)과 함께 우리나라 최고의 독립운동 가문으로 손꼽힌다.

안중근 의사는 “높은 벼슬아치들이란 제 몸만 알고 나라를 모르는 자가 많다. 그러나 왕산 그는 그렇지 않았다”고 했을 정도로 선생의 의병활동과 나라사랑 정신은 안중근 등에 의해 계승되었고 이후에도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이날 향사의 초헌관을 맡은 장세용 구미시장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왕산 허위선생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리고 나아가 나라를 위해 3대가 헌신한 왕산가의 모든 분들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드린다”고 했다.

구미시는 향후 왕산기념관 일대를 확장하여 지역 출신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선양사업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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