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과학자의 예언들
상태바
[기고] 과학자의 예언들
  •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유전자공학과 안일평
  • 승인 2019.10.14 14: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유전자공학과 안일평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유전자공학과 안일평

[매일일보] 과학은 항상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 과학은 현재 물리학, 생물학, 화학 등 여러가지 모습으로 우리 주변에 존재하며 따라서 매우 다양하지만 근원을 탐구하다 보면 현상을 지배하고 있는 근본적인 법칙들을 발견할 수 있는 경우가 있으며 과학자들은 평생 이러한 법칙들을 찾아 헤매고 자신이 가정한 법칙에 확신이 생긴 경우 현상을 예언하기도 한다. 

본질적인 측면에서 이러한 예언은 마치 주술사가 부족민들에게 예언을 해 주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는데 두 예언들의 차이점은 단지 그 원인과 과정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언제든지 동일한 상황에서 동일한 현상이 필연적으로 재현되는 것인지일 것이다. 이 두 가지 차이의 원인은 두 예언 각각을 뒷받침하는 데이터베이스(경험 혹은 실험과 결과)가 얼마나 충실하고 객관적인지의 차이일 뿐이다.

다윈은 '종의 기원'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물론 이 저서 이외에도 비이글 호 항해 동안, 그리고 그 이후로 활발하게 학술적으로 활동했다. 다윈 시절에는 과학이 현재처럼 분화되어 있지는 않았고 뭉뚱그려서 박물학으로 총칭했는데 박물학은 주어진 가설을 설명하기 위해 실험을 하고 그 결과를 분석하여 가설이 참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보다는 보고된 자연 현상을 관측하고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주된 분야로 했다. 

아마도 다윈의 시대에서는 오지를 탐험하고 영국이나 유럽 등지에서는 보기 어려운 장대한 지질학적 변화를 설명하거나 땅 속에서 발굴한 기괴한 모양의 화석들과 이를 복원한 복원도 같은 것, 오리 너구리 같은 포유류로도 조류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신종 발견 등이 살롱이나 사교계의 신사숙녀 분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지원금이나 기부금을 모을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텔레비젼이나 인터넷 상의 자연 다큐멘터리, 혹은 세계 여행 프로그램 같은 것에 열광하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박물학자였던 다윈은 종의 기원의 처음을 다양한 인공 육종의 예시로 시작한다. 그 당시 종이란 신의 뜻에 따라 디자인 된 생명체라는 것이 교단과 기존 과학계의 생각이었던 반면 다윈은 종은 변화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닌 생명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생각했기에 극적인 종 내 변화를 보여줄 수 있으며 그 예가 축적되어 있는 인공 육종에서 종 변화 혹은 종 분화의 출발점을 보여주기를 원했으리라 생각한다. 

사람들은 종종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특정 분야에 매료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비둘기 육종도 그런 취미 중의 하나다. 당시 영국에서는 비둘기 육종이 상대적으로 오랜 시간 동안 유행이었는데 유력 귀족 가문이나 비둘기 육종을 전문으로 하는 육종 전문 업체에는 전문 비둘기 육종가가 다수 있었고 이들은 비둘기 육종 대회에 출품하기 위해 갖가지로 특색이 있는 비둘기들을 육종해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마치 요새 자동차 경주 대회가 연상되는 면도 있다. 비둘기 육종 대회마다 육종 항목도 다양해서 공작과 유사한 모양의 비둘기 육종 대회, 특색 있는 목깃, 무지개색 깃털 등등 외형적인 것들과 보다 먼 비행거리, 보다 빠른 비행속도 등 전서구에 이로운 특성, 애완성이 높은 품성 등등 온갖 유/무형의 특성들이 다 목표가 되었다. 

육종대회에도 원칙이 있었는데 일단 출발점은 모두 일반 집비둘기로 대회 개최 측에서 알을 나누어 주는 경우도 있었고 각 육종가들은 자신들의 사육장에 소장하고 있는 비둘기들과 일반 집비둘기들을 교배한 후 목표한 대회에서 목표로 한 분야에서 가장 우수한 개체를 지속적으로 선발했다. 

또한 가장 짧은 세대 내에, 즉 가장 적은 교배횟수를 거쳐 가장 높은 정도의 목표한 모습을 만들어내는 것도 점수 평가 항목에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았기에 많은 경우 어느 정도의 교배만에 목표한 모습을 선발해 안정된 모습을 만들 수 있는가가 비둘기 육종가의 능력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이런 모습은 현대 육종에서도 자주 발견되는 모습이다. 고추를 예로 들어 보자. 현대 고추 농업에서 고추 종자는 오랫동안 한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경작해 온 토착종을 재배하는 경우보다는 육종 회사에서 생산한 F1 종자를 심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소비자가 원하는 품질을 이 종자들이 가장 많이 가지고 있기에 판로를 확보하기 쉽고 따라서 경제성이 높기 때문이다. 육종회사로서도 형질이 고정되어 있는 토착종을 판매하는 것보다 F1 종자를 판매하는 것이 경제성이 높고 산업 보안상으로도 훨씬 안전하다. F1 종자는 육종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두 가지 품종을 교배해서 수확한 당대 종자인데 따라서 이 종자를 기른 F1 고추 식물에서는 모든 유전적 열성 형질은 발현되지 않는 반면 우성 형질들은 모두 발현된다. 따라서 F1 집단에서는 모든 발현 형질이 양친이 가지고 있는 형질 중 우성인 형질들만이 발현되어 집단 내 형질 발현이 모두 동일하다. 

병 저항성을 예로 들면 현대 농업에서 가장 잘 사용하는 것이 우성 단일 병 저항성 유전자인데 양친 중 하나는 특정 유전체 자리에 병 저항성을 부여하지 않는 열성 유전자를 동일하게 가지고 있고 나머지 하나는 같은 유전체 자리에 병 저항성을 부여하는 우성 유전자를 동일하게 가지고 있는 경우 그들의 자식인 F1 종자와 식물체의 유전체에는 특정 유전체 자리에 병 저항성을 부여하지 않는 열성 유전자와 병 저항성을 부여하는 우성 유전자가 이형적으로 존재하게 되며 이 경우 우성 병 저항성이 발현되고 모든 F1 식물체 집단에서도 동일하게 병 저항성이 발현된다. 

하지만 일반 농민이나 경쟁 업체엇 병 저항성을 목표로 하여 F1 식물로부터 F2 종자를 수확할 경우 이 세대에서는 유전자가 우성동형, 우성이형, 열성동형이 1:2:1의 비율로 분리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이에 더해 F1 세대에서는 가려져 있던 여러가지 다른 유전자들의 우열 관계가 복합적으로 분리되기 때문에 F1 식물체에서 수확한 F2 종자는 그 자체로는 유전자 정보를 파악하기도 힘들고 경제성도 없다. 

이것이 F1 종자가 산업적으로 보안 가치가 높은 이유이고 따라서 고추 육종 회사에서는 부모 세대로 이용할 유전자원 확보와 교배가 잘 되는 고추에 목표 형질을 도입하는 작업에 총력을 다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목표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유전자원이라 해서 모두 교배가 잘 되지는 않으며 오히려 목표 유전자의 경제 가치가 높을수록 교배가 잘 되지 않아 이 유전자들을 교배가 잘 되는 중간 모본에 옮겨 심는 작업을 필수로 하는 경우가 많고 목표 형질의 도입은 이 중간 모본을 이용하게 된다. 

비둘기 육종에서도 외형적 차이가 뚜렷한 품종일수록 일반 집비둘기와의 교배가 쉽지 않은 경우가 많았으리라. 이러한 경우를 대비해 비둘기 육종가들 또한 목표 형질을 획득한 중간 세대들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으며 이러한 유전자원들을 많이 보유한 육종가일수록 뛰어난 육종 실력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또한 이런 중간세대들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요새 고추를 위시한 거의 모든 작물, 가축에서 사용되는 육종 차트와 육종 계보도가 실험 노트나 야장의 형식으로 체계적으로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었어야만 할 것이다. 근세기 들어 가축 육종은 거의 종이 변화하는 정도의 형질 차이를 만들어낸다. 

젖소 유량의 경우 1950년대 생산능력이 2000-2500kg에 불과 했으나 90년대에는 년간 6000kg에 도달했다. 돼지의 경우 더욱 극적이어서 1960년대경 돼지가 90kg에 도달하는 데에는 8-9개월이 필요했으나 90년대 들어서는 그 절반 정도의 사료만으로도 90kg에 도달하는 데에 5개월이 채 걸리지 않는다. 

심지어 닭 같은 경우에는 야생닭에서 보이는 산란 주기가 없어져 연중 계속 산란하며 1950년도에 평균 170개 정도이던 것이 90년대에는 평균 280개의 달걀 생산이 가능해졌다. 이러한 육종의 결과물들은 종이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으며 비둘기 육종에서 보듯 심지어 같은 종이 맞나 싶을 정도의 변화가 적절한 선택 압력만 주어지면 짧은 시간 내에도 얼마든지 가능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인공 육종의 인위적 선택 압력은 자연계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종 변화 선택 압력 중 하나에 불과할 뿐이다.

다윈은 비이글 호의 탐험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따개비 연구 등을 통해 박물학적 지식들을 축적해 갔으며 또한 자신이 수집한 자료들과 여러 다른 자료들을 이용해서 종은 변화할 수 있으며 변화하고 있음을 확신했다. 계속 한 분야에서 연구를 하다 보면 옆에서 비전문가가 봤을 때 도대체 어떻게 저런 예견을 할 수 있는지 놀라운 경우가 많다. 다윈도 연구 경험이 축적되며 이런 예견이 가능해졌었나 보다. 

1862년 그의 나이 50대 초반, 생물학자로서의 지식은 원숙해면서 활력은 아직 남아있는, 생물학자로서는 가장 아름다운 시절에 그는 마다가스카르에 서식하는 한 난초, Angraecum sesquipedale에 대한 언급을 남겼다. 매우 아름다운 꽃의 꽃자루는 무려 30cm 이상 될 만큼 길었고 그 끝 줄기와 연결된 부위 즈음에 꿀샘이 있었다. 꽃은 모두 알다시피 식물의 생식기관이며 식물이 꽃을 피우는 목적은 충매화인 경우 보다 효율적이고 선택적으로 자신의 수분을 도울 수 있는 꽃가루 매개충을 유혹하여 다른 꽃가루는 되도록 방지하고 같은 종 다른 개체의 꽃가루만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이를 위해 그들은 매개충을 유혹하는 수단인 꿀을 생산하며 동시에 다른 종의 꽃가루를 가지고 와 수분을 방해하는 다른 매개충의 꽃가루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 물리적인 장벽을 구축하기도 한다. 

다윈에게 있어 이 충매화 난초에서 발견되는 독특하고 당대로서는 기괴하다 할 수 있는 꽃자루 길이는 다른 매개충의 접근을 근원적으로 방지하는 물리적 장벽인 동시에 파트너인 꽃가루받이 곤충에 의한 꽃가루 받이만을 허용할 수 있도록 변화한 결과물이라는, 현대에는 당연하지만 당시로서는 놀라운 예견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그의 사후 21년인 1903년에 구기 즉 입 길이가 30cm에 달하는 나방이 난초의 꽃가루받이에 절대적으로 관여함을 발견했고 이는 한 생물의 변화가 다른 생물의 변화를 이끌어내는데에 절대적으로 기여하는 공진화의 전형적인 예 중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후 이 난초는 다윈의 난초로 불리기도 한다.

다윈의 예언에 대한 뒷받침 중 가장 근래의 것은 한 종의 핀치새가 갈라파고스 제도의 여러 섬으로 이주한 후 각각의 섬에서 접할 수 있는 먹이의 종류에 따라 부리 모양이 바뀌는 등 15개에 달하는 아종 분화가 일어났다는 주장에 대한 것이다. 21세기 생물학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생물 유전체 분석이 거의 전 생물계에 거쳐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으며 근연종이나 한 종 내 특정 집단 전체에 대한 유전체 분석을 여러 가지 형질과 대조 분석하여 형질 변화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들을 특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육종에서는 이를 이용해 목표하는 형질 변화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유전자 후보들을 선발하기도 하고 집단적인 변화의 원인을 추정하기도 한다. 2015년 유전체 분석학자들은 핀치 새들의 유전체들을 분석하고 부리모양과 유전체 다형성을 대조·분석한 결과 ALX1이라는 유전자의 염기서열 변화가 부리 모양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었을 것임을 추정할 수 있었다. 이는 다윈 사후 거의 150년만에 일어난, 선택압력이 종 변화 및 분화에 미치는 영향을 유전체학적으로 증명한 또다른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자신이 믿는 바를 끝까지 견지하고 옆에는 자신과의 토론을 통해 자기의 의견에 동조해 주며 심지어 그 증거가 사후 2세기에 이르도록 나타나 계속 생물학의 앞날에 나타나는 다윈은 과학자로서 훌륭한 사람이었고 합리적인 예언가였다. 과학자들 중에는 예언자들이 참으로 많은가 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