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유통업계 규제, ‘각주구검’ 교훈 되새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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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유통업계 규제, ‘각주구검’ 교훈 되새겨야
  • 임유정 기자
  • 승인 2019.10.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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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유정 기자
임유정 기자

[매일일보 임유정 기자] ‘각주구검(刻舟求劍)’이라는 고사가 있다. 융통성 없이 현실에 맞지 않는 낡은 생각을 고집하는 어리석음을 이르는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2000년도 훨씬 전인 중국 춘추전국(春秋戰國)시대 초(楚)나라의 한 사람으로부터 유래한다. 배에서 칼을 물속에 떨어뜨리고 그 위치를 뱃전에 표시했다가 나중에 배가 움직인 것을 생각하지 않고 칼을 찾았다는 일화에서 파생됐다. 때문에 시대적 변화를 읽지 못하는 상황을 나타내는 말로 흔히 인용된다.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진리는 바로 ‘세상은 변한다’라는 것이다. 그런데 유독 변화를 뒤따르지 않는 곳이 있다. 바로 유통업계다. 온라인 유통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오프라인 업체들은 갈수록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업계를 둘러싼 각종 규제는 오프라인 업체만을 향하고 있어서다. 현재의 상태가 그대로 유지된다는 가정 아래 이해득실을 따지는 것은 각주구검의 우(愚)를 범하는 일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는 지난달 23일 무분별한 복합쇼핑몰의 입점을 규제하기 위해 지자체의 지구단위계획 수립 단계부터 입점 허용여부를 검토하도록 관련 시행령을 개정키로 했다. 대규모 점포 개설 허가를 받기 위해 제출해야 하는 ‘상권 영향평가’의 대상을 거의 전 소매업종으로 대폭 넓혔다. 동시에 여당은 대형마트를 넘어 복합쇼핑몰도 주말에 문을 닫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열심히 고삐를 당기는 중이다.

최근 개정된 규제는 지자체가 도시계획을 세울 때 특정 구역에 대형 유통점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 지역 소상공인의 생존권을 보장하겠다는 취지서 출발했다. 그러나 성공 가능성에 대한 답은 과거 행적을 돌아보면 이미 나와 있다는 해석이다. 대형마트가 문을 닫으면 소비자들이 전통시장에 몰릴 것이란 오판으로 마트의 주말 영업 제한을 시작한 게 벌써 7년 전이다. 하지만 전통시장은 여전히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기업의 두 발을 묶는 규제는 비단 규제 그 자체로 그쳐서는 안 된다. 규제만으로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을 수 없음을 인식해야 한다. 온라인 시대에 맞서 대기업의 선도적 투자로 성장 동력을 되살려야 하는 중요한 시점이다. 산업 활력을 높이고 규제 개혁으로 기업들의 투자 여력을 북돋아야 한다.

더욱이 국가는 기업 규제를 일자리 창출과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제는 일자리 정책 프레임 전환을 생각할 때다. 국가가 일자리를 책임지겠다는 생각을 하기보다 기업이 양질의 인력을 고용할 수 있도록 뒤에서 묵묵히 지원하는 역할이 선행돼야만 한다. 과도한 규제는 ‘인력가뭄’을 재촉할 뿐이다. 유통규제를 둘러싼 실효성 논란은 7년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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