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 속 내 역할은 ‘고문인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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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 속 내 역할은 ‘고문인형’이었다”
  • 류세나 기자
  • 승인 2009.04.13 1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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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인권유린 집합체 ‘복지시설’…생활인 보호 커녕 돈벌이 수단∙학대도구로 악용

구타․고문․성추행 비일비재…퇴소 자유조차 없어
시설 몸집 불려 보조금 착복하고 서비스는 ‘無’

[매일일보=류세나 기자] 작은 일에도 ‘까르르’하는 천진난만한 웃음소리를 내며 크게 기뻐하는 장애인과 휠체어에 앉은 장애인을 밀어주며 환하게 웃는 재활교사의 모습. ‘장애인 복지시설’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쉽게 연상되는 장면 중 하나다. 하지만 사회복지시설에서 생활했던 일부 장애인들의 입을 통해 들은 시설의 일상은 이 같은 ‘상상’ 속 모습과 동떨어져 있었다. 공금횡령은 물론이고 시설 수용자에 대한 학대, 성추행 등 외부와 단절된 공간에서 발생한 시설 속 이야기는 끔찍했다. 
 

영∙유아기 때부터 장애인복지시설에서 생활해 온 뇌병변 1급 장애인 H(24∙여)씨는 10여년  전부터 어깨 탈구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H씨에 따르면 그는 10살 때 넘어지면서 처음으로 어깨가 탈구됐다. 이후 시설 재활교사 등은 ‘시끄럽다’ ‘말을 듣지 않는다’ 등 시시콜콜한 이유를 붙여가며 시도 때도 없이 H씨의 어깨관절을 뽑았다고 한다. ‘관절뽑기’는 5공시절 ‘고문기술자’로 알려진 전 경기도경 대공분실장 이근안이 자주 사용했던 고문기술 중 하나로 그만큼 H씨가 당했을 고통도 컸다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말해주는 대목이다.

병원 진찰결과 H씨는 오랜 기간 동안 여러 각도에서 탈구가 돼서 치료가 불가능 하다는 의사의 소견을 들었다. H씨는 시설에서 당한 ‘고문’으로 지난 10여년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평생 언제 빠질지 모르는 어깨를 부여잡고 살아가야만 한다.

이 같은 H씨의 사연은 지난해 12월 H씨가 해당 시설에서 퇴소하고 민들레 장애인자립생활센터로 옮기면서 자립센터 복지사들에 의해 드러나게 됐다. 이와 관련 민들레 장애인자립생활센터 한 관계자는 “해당 복지시설에 H씨의 상황에 대해 따져 묻자 ‘H씨는 원래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이라며 혐의사실을 부인했다”며 “14년간 고문을 당했던 H씨의 고통은 어디에서 보상받아야하냐”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시설 생활인들이 ‘야반도주’한 까닭은?

사회복지시설의 인권침해 문제는 그간 언론을 통해 여러 차례 공개 됐다. 90년대 정신지체시설인 충북 D원에서 벌어진 비장애인 강제수용, 경기 E원의 장애인 구타사망의혹, 장항 S원 사망환자 암매장 등 이 같은 인권침해 사건은 2000년도에 들어서도 계속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2008년 진정사건처리현황’에 따르면 전체 인권침해 진정건수 27,993건 중 1,976건이 장애인복지시설에 대한 진정이었으며, 사건 유형별 처리진정 5,380건 중 장애차별이 1,222건으로 전체진정건수의 22.7%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같은 수치는 우리사회에서 장애인에 대한 인권침해 수준이 심각하며, 특히 이들을 보호해야할 시설에서 조차 이들의 인권이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 전북시설인권연대 강현석 상임대표는 “시설 안에 있는 장애인들은 친척이나 부모 등이 동행하지 않으면 외출허가도 받을 수 없다. 퇴소 또한 자유롭게 할 수 없어 몰래 야반도주하는 장애인들도 많다”며 “생활지도사에 의한 구타로 더 큰 장애를 갖게 되는 사례 역시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이어 “1만원짜리 화폐가 처음 조폐공사에서 발행됐을 때는 빳빳하고 깨끗한 ‘새 돈’이었다. 그런데 이를 사람들이 사용하다보면 구겨지기도 하고 낙서가 적히기도 하는 등 훼손된다. 하지만 1만원이라는 돈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데 우리 사회에서 ‘인간’의 가치는 ‘돈’과 달리 그대로 유지되지 않는다”며 “장애인은 비장애인들과 똑같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달리 권리와 인권을 박탈당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폐쇄성’ 덕에 운영자만 ‘꿩 먹고 알 먹고’

▲ 지난 3월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건복지가족부 앞에서 열린 제5회 전국장애인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장애인 차별 철폐를 주장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시설운영자의 비도덕성, 비전문성, 비민주적인 운영방식 때문에 이 같은 인권침해 사례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대규모 수용시설 중심의 사회복지 정책, 시설에 대한 정부의 허술한 관리감독 체계도 이에 한 몫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장애시설의 대부분은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까지 함께 모여 사는 ‘대규모’ 시설로 이용자들은 선택권이나 자기결정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관리의 대상일 뿐, 권리를 행사하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

이와 관련 강 대표는 “일부 시설의 시설장이나 관리운영자들은 사회복지시설을 개인의 사유물로 인식하고 각종 부정과 비리를 일삼는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며 “시설 생활인에게 돌아갈 보조금을 중간에서 강취해 장애인들에게 돌아갈 의식주 등 각종 서비스의 질이 현격하게 떨어지거나 아예 공급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20여 년간 시설생활을 했던 뇌성마비 1급 장애인 한규선(49∙남)씨는 “시설생활은 인간으로서의 모든 권리를 박탈당한 생활이었다”며 “시설 설립자의 말이 곧 법이었고, 일부 재활교사들은 ‘말을 안 듣는다’는 이유로 추운 겨울날 욕실에 끌고 들어가 찬물을 끼얹기도 하고, 밥을 몇 끼씩 안 주기도 했다”고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사회복지 시설에서 각종 인권침해와 운영 부조리가 가능했던 이유는 시설의 폐쇄성과 연관이 깊다. 대부분의 장애인 복지시설들은 님비현상으로 인해 거리상 지역사회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접근성이 떨어져 있다 보니 사람들의 발길도 뜸하게 되고 자연스레 폐쇄성을 띠게 된 것. 이 같은 환경 탓에 비민주적인 운영도 가능해졌다. 인권활동가 등이 장애인은 물론 그들의 가족, 시민들이 접근하기 쉬운 ‘시설의 지역화’와 ‘탈 시설화’를 주장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정부서 장애인 탈시설 기반 마련해야”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 ‘장애인생활시설 생활인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참여했던 조사자들은 당시 이구동성으로 “시설 안에서 대안을 찾으려 노력했으나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시설의 위계질서 등 기본적인 구조가 그대로라면 운영방법이나 시설 내 환경을 바꾼다고 해도 장애인들에게 ‘인권’이 보장될 수 없다는 것.

이에 대해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김정하 활동가는 “시설의 운영 및 전달체계 개선과 더불어 민주화가 이뤄져야한다”며 “하지만 최선의 방법은 정부가 시설 생활인들의 탈시설 기반을 마련해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활동가는 이어 “앞으로 장애인을 위한 국가 예산은 시설확충이 아닌 자립생활을 위한 방향으로 바뀌어야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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