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전광판식 규제샌드박스는 집어치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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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전광판식 규제샌드박스는 집어치워라
  • 이승익 기자
  • 승인 2019.09.30 11: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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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고 가벼운 규제해소만...나무는 보고 숲을 보지 않아
양적 스코어만 자랑 누구를 위한 규제샌드박스인가
사진=이승익 중소기업부장
사진=이승익 중소기업부장

[매일일보 이승익 기자] 유명한 역사학자이자 경제사상가인 니얼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는 명저 《시빌라이제이션》에서 종이, 화약, 물시계, 성냥, 자석 나침반, 놀이용 카드, 칫솔, 일륜차 등 상당수 물건이 중국에서 발명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스코틀랜드에서 처음 한 골프도 중국 송나라(960~1279년) 기록을 보면 ‘추환’(捶丸)이 먼저 시작된 거라고 봤다. 경기에 쓰이는 열 개의 클럽 중 쿠안방, 푸방, 샤오방 등은 오늘날 골프 경기에 등장하는 드라이브, 2번, 3번 우드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이 뿐만 아니다. 농업에 있어서도 중국은 유럽보다 훨씬 생산성이 높았다. 당시 동아시아에서는 0.4헥타르만 있으면 한 가족이 먼저 먹고 살 수 있었지만, 영국은 한 가족이 먹고 사는데 거의 8헥타르의 토지가 필요했다. 그랬던 동·서양의 기술력이 완전히 뒤바뀐 것도 모자라, 동양이 서양 열강의 식민지로 전락한 것은 역사적으로 볼 때 매우 아이러니하다. 왜 그랬을까. 저자는 이유를 ‘경쟁’으로 봤다. 중국은 중앙집권 형태로 국가가 운영됐기 때문에 다양한 인종과 국가가 어우러진 서양에 비해 경쟁이 덜했다. 

거대한 만리장성을 쌓아 외세를 막으려고만 했을 뿐 정작 내부에서는 치열한 경쟁이 일어나지 못했다. 반면 서양은 근대국가가 형성되기 전까지 무수히 이합집산을 반복해야 했다. 뿐만 아니라 서양이 제국주의로 탈바꿈한 이유는 이성을 중시하는 방식의 학문 경향으로 탈바꿈해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과학적 발견 중 38%가 종교개혁과 프랑스혁명 사이에서 나왔다는 것은 인간의 자유로운 사고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선입견은 사고를 더디게 만든다. 그리고 사고의 더뎌짐은 기술의 퇴보를 의미한다. 

◆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규제개혁

지난주 과기부에서 규제샌드박스 6차 심의결과를 발표했다. 중기부,산자부,과기부,금융위 등 모든 기업 관계 부처들이 너도나도 경쟁하며 전광판식 스코어 방식 성과를 경쟁하고 있다. 지난주 과기정통부는 올 1월부터 규제 샌드박스 제도 시행 이후 현재까지 총 102건 과제를 접수받아 78건을 처리했다. 이낙연 국무총리 산하 국무조정실의 목표치가 100개라고 하니 과기부의 이같은 실적은 과히 자랑할 만한 수치다. 해당 부처의 실무자와 부처는 최선을 다한 결과라 박수를 칠 만 하다. 들어온 규제건수가 많다 보니 이같은 고충을 풀려는 이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만 한 대목이다.

하지만 국무조정실의 큰 방향타가 잘못됐다. 과연 이같은 규제개혁이 양적인 결과만 중요한 것인지. 정작 필요한 규제는 손도 못대고 가장 지엽적이고 쉬운 규제들만 풀어가려 하는 것은 아닌지. 눈앞에 징징거리는 이익집단의 몽니만 달래주려고 한 채 정작 소외받고 역차별 받는 기업들은 얼마나 헤아리고 있는지. 담당 부처간 효율적 의사교류와 한 부처내 전문 인력들이 얼마나 배치되어 있는지. 규제샌드박스를 통과했다 하더라도 향후 지원에서는 또 다른 규제가 없는지. 

지난 주 우리 지면에서는 동반성장위원회가 지난 6월 발표한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에 관한 특별법의 문제점에 대해서 지적했다. 소상공인을 보호한다는 명분하에 만든 규제인데 이제는 고추장도 기업들이 만들지 못해 중국산에 밀리게 될 뿐만 아니라 결국 소상공인도 보호 하지 못하는 역설적인 현상을 지적했다. 더욱이 해외로 수출하여 K-푸드를 대한민국의 성장동력으로 삼는데 결정적인 발목도 잡고 있다. 이같은 현상이 식품업계에서 비단 고추장 뿐일까.

더 나아가, 플랫폼 택시 규제는 아직도 계류중이고 대형마트들의 역차별 규제로 인한 실적악화로 비롯한 대규모 일자리 감소, 프랜차이즈 업계에 대한 규제로 인해 발생한 가맹점주들의 손실, 對 일본 부품소재 경쟁력을 강화하라면서도 손도 못되고 있는 화평법,화관법에 대한 규제 등 정작 대한민국이 미래로 나아가는데 있어 국가철학의 부재와 빈곤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로지 조국 외에는 관심도 없는 386 문정부의 포퓰리즘과 아마츄어리즘의 민낯이라 할 수 있다.

얼마전, ‘규제특례 임시허가 1호’로 선정됐던 그린스케일의 블루투스 통신기반 네트워크 계량 시스템 회사가 결국 문을 닫았다. 회사 대표는 지난 10년간 혼자 3개 정부부처를 상대했다고 한다. 그는 “나는 비록 사업을 포기했지만, 처지가 비슷한 다른 기업들은 피해를 보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에 국회에 청원서를 제출했다”며 “사업을 재기할 생각은 없고 공무원들의 소극 행정에 넌덜머리만 난다”라고 사업 재개를 묻는 질문에 단호하게 답했다. 

이러한 데도 규제샌드박스를 총괄 지휘하고 있는 국무조정실은 이같이 양적 팽창을 생각하며 각 부처별 전광판 스코어식 규제샌드박스만 과연 고집할 것인가. 작금의 방향에 대해 전략적 고민을 다시 짚어봐야 한다. 잘못된 길을 운전해 갈땐 간만큼 다시 돌아와야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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