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기업 총수 망신주기 국감은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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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기업 총수 망신주기 국감은 이제 그만
  • 이상래 기자
  • 승인 2019.09.29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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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이상래 기자] 요즘 수출기업 관계자를 만나면 경영하기 어렵다며 한숨을 쉰다. 경영환경이 급격히 변하는 게 그 이유라고 한다. 우리나라를 둘러싼 대외환경을 보면 절로 납득이 간다.

미·중 무역전쟁은 끝이 날줄 모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자존심 싸움은 평행선만 달린다. 미국과 중국에 낀 한국은 미·중 무역전쟁의 양상에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꼴이다.

여기에 한·일 경제전쟁도 겹쳤다. 전문가 사이에서는 일본 수출규제로 반도체·디스플레이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말이 나온다. 단기적으로는 우리 정부와 기업이 합심해 위기를 넘겼지만, 장기적으로는 생산 차질이 불가피하는 게 전문가의 중론이다.

대기업이라고 이같은 생태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오히려 글로벌 기업과 치열한 생존경쟁을 펼쳐야 하기에 대기업 변화는 더욱 긴급히 요구된다.

대기업 총수가 그룹 조직을 정비하고, 미래 사업전략을 구상하는 데 분주히 움직이는 이유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최근 삼성전자 사업장뿐만 아니라 전자 계열사 사업장도 찾아가 직원을 격려하고 사업을 점검했다. 이 부회장 메시지는 ‘흔들림 없이 미래를 준비하자’로 요약된다. 특히 이 부회장은 메시지뿐만 아니라 추석 명절에 사우디아라비아를 찾아 빈 살만 왕세자와 삼성과 사우디의 사업협력을 논의했다. 삼성의 미래 먹거리 마련을 위해 이 부회장이 사우디에 직접 날아간 것이다.

최태원 SK 회장은 그룹에 ‘행복경영’ 가치를 이식하기 위해 직원들과 끊임없이 소통한다. 직원과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는 ‘행복토크’를 최 회장은 올해 80회 가량 진행했다. 철학적인 ‘행복’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직원들에게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최 회장의 소신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구광모 LG그룹 회장도 그룹의 체질 개선을 위해 새로운 시도를 진행 중이다. 구 회장은 그룹의 순혈주의를 깨기 위해 외부인사를 영입했다. 직원들에겐 자신을 ‘대표’라 불러달라며 친근히 다가기도 했다.

기업은 이렇게 변하는데 정치권에서는 여전히 과거 행태가 엿보인다. 최근 국정감사 증인으로 총수를 출석해 일명 ‘망신주기’식의 호통 퍼포먼스를 보여주려는 시도가 그것이다. 이번 국감을 앞두고 총수 출석이 논의됐다고 한다.

재계 관계자라면 기업에서 총수를 대리한 대외업무 담당 고위급 임원이 있다는 건 다 알 것이다. 그럼에도 굳이 총수를 국회로 불러 이목을 끌겠다는 구시대적 사고가 잔재하는 건 안타깝다.

최근 재계에서 “우리 경제는 버려진 자식같다”는 말이 화제였다.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뜬금없이 ‘버려진 자식’을 찾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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