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규제 침몰 타이타닉호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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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규제 침몰 타이타닉호와 다르지 않다
  • 이승익 기자
  • 승인 2019.09.19 1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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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이승익 기자]

이승익 유통/중기부장
이승익 유통/중기부장

일본 소프트뱅크 창업자 손정의 회장의 입만 열면 외쳐대는 ‘싱귤래리티(Singularity)’라는 개념을 주목하고 싶다. ‘특이점’이라는 우리말로 직역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싱귤래리티라는 말은 원래 수학계에서 쓰던 용어였다. 일반적 이론이 통하지 않는 지점을 뜻한다. 이후 물리학으로 넘어가 중력장이 비정상적으로 무한히 뻗어 나가는 점을 가리킬 때 쓰였다. 다시 말해 싱귤래리티는 과학기술이 폭발적 성장단계로 도약해, 인간 본연의 생물학적 조건을 뛰어넘는 새로운 문명을 낳는 시점을 뜻한다. 

최근 거대한 M&A를 연달아 성공시키고 있는 손정의 회장은 싱귤래리티가 인류를 새로운 길로 이끌 거라고 본다. 그 단초를 그는 인공지능(AI)에서 찾는다. 그는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뉴 비전’의 핵심 용어로 이 단어를 쓰며 관심을 끌었다. 정작 우리는 아직까지 이에 대한 준비가 없다. 당위성은 누구나 알지만 구체적인 실천은 아직도 제 자리 걸음이다. 이러다 둑이 무너지면 어떻게 되는지, 우리는 이미 스마트폰에서 이를 확인했다. 

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개념의 산업이 탄생한다면 이를 뒷받침할 수 이는 사회적 인프라도 중요하다. 각 산업마다 여기에 적용된 규제들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따져보는 게 급선무다. 이중 만약 역기능이 크다면 관계 법령의 문턱을 대대적으로 낮춰줘야 한다. 지금과 같은 방식이라면 우리나라에서 우버나 에어비앤비와 같은 혁신기업은 나올 수 없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최근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완전 경쟁을 주장하고 있는 것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재원과 인력 면에서 중소기업에 비해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고 있는 대기업에게 우리의 모든 미래를 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보다는 기민하게 움직이며 틈새를 찾는 기술벤처가 훨씬 더 경쟁력이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규제 샌드박스의 혜택을 보는 기업은 대부분이 신생기업이다. 

이들 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자금력이나 인력수급 면에서 한계가 있다. 정부가 각종 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아직은 미흡한 측면이 많다. 간신히 규제 샌드박스를 통과해도 실질적인 혜택은 턱없이 부족하다. 따라서 규제 샌드박스를 통과한 중소기업(중견기업 이상은 제외)에게는 과감한 인큐베이팅과 정책자금 지원 등 지원책이 절실히 요구된다.  

경쟁이 양자의 발전을 만든다는 것을 우리는 인류의 역사를 통해 확인했다. 하지만 체급이 전혀 다른 사람을 함께 링 위로 올릴 수 없는 것 아닌가. 또 다른 특혜시비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강력한 지원책은 힘들더라도 최소한 실질적 제도 보완을 꼭 해주시길 간곡히 바란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구조적 한계가 있더라도 그러한 노력이 뒷받침된 역동성은 기술의 진보와 산업의 발전이라는 분명한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그 외에도 몇 가지 정책적 제안을 해보겠다. 현재 정부가 운영하고 있는 규제심의위는 심사위원들이 학계 인사나 정부 관료들로만 구성돼 있어 제대로 된 현장의 목소리를 담는데 한계가 있다. 때문에 시장에서 활동하는 이해관계자와 소비자들이 심의위원회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넓혀야 보다 현실적으로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규제샌드박스 도입에 적극적이다 보니 정작 부처들은 뒤따라가기에 급급하다. 시간이 워낙 부족해 부처들은 서로가 원하는 중간선에서 협상하기 다반사였다. 이 같은 이유로 실체적 진실이 필요한 규제개혁이 아니라 단순히 산술적 평균을 구하려는 어정쩡한 규제개혁이 진행돼 왔다. 이럴 경우 사업자로선 추가적인 규제개혁을 신청해야 한다. 

하지만 여기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 대입 수능을 끝낸 수험생에게 이후에도 또다시 수차례 수능시험을 보라고 한다면 어떻겠는가. 그렇게 때문에 높은 정부기준을 통과한 기업에게는 비중이 적은 중간고사, 기말고사처럼 패스트트랙 방식으로 내부 잔여규제를 풀어내는 것이 좋다.  

지난 칼럼에서 설명한 포괄적 네거티비 시스템도 도입도 절실하다. 포지티브 시스템으로 모든 규제를 푼다고 해도 산업이 가진 한계점을 극복하기란 쉽지 않다. 법과 제도는 만들기는 쉽지만, 철폐는 어렵다. 규제 샌드박스 제도가 생겨나면서 정부 부처 곳곳에서 우려의 목소리를 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때문에 차제에 규제 전체를 총량제 방식으로 구성해 만들어진 만큼 규제를 없애는 방법도 도입해야 한다. 지금처럼 무작정 만들어 놓고 쌓아놓기만 한 배는 얼마 가지 못해 바다로 침몰하고 만다. 갈수록 규제는 늘어나지만 기존 규제는 여전히 살아있다면 대한민국은 머지 않아 규제의 선적량을 초과한 타이타닉호와 같은 규제침몰 국가가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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