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탐방]팬택, '불굴의 도전' 성공 후 비상의 날개짓 활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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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탐방]팬택, '불굴의 도전' 성공 후 비상의 날개짓 활짝
  • 김창성 기자
  • 승인 2012.12.17 07: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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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기까지 스마트폰 239만대 팔아…업계 2위
기업개선작업 극복한 국내 IT 기업의 이정표

[매일일보 김창성 기자] 대한민국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는 창업 후 매출 1조원을 달성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다. 그러나 팬택은 91년 창업 후 10년 만에 매출 1조원을 달성했다. 직원 수 6명으로 시작해 창업 10년 만에 직원 수가 2000여 명으로 늘어나며 이룬 성과다. 아울러 제조업체 중 90년대 이후 창업해 수조단위 기업으로 성장한 유일한 사례기도 하다. 승승장구 하는 와중에 겪었던 기업개선작업 이라는 단 한번의 시련조차도 미래를 향한 도전정신으로 극복해 비상을 꿈꾸는 팬택. 그들이 걸어온 불굴의 도전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국내 IT기업의 이정표라 할 수 있다.

흰 도화지에 미래를 그리다

1991년 직원 수 6명으로 출발한 팬택은 92년 무선호출기를 생산·판매하며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이후 팬택은 1997년 휴대폰이 미래 이동통신의 신 성장 산업으로 도약할 것이라 예측하고 과감한 결단을 내려 체질변화를 시도했다.

이때부터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도전정신과 산업의 트렌드를 정확히 판단하고 신속히 대응하는 팬택만의 DNA가 발휘됐다.

이러한 팬택의 적기 체질변화와 공격적인 경영은 98년 모토로라와 1500만 달러 외자유치 및 전략적 제휴계약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모토로라는 구미가 당길 만한 거액을 박병엽 부회장에게 제시하며 팬택 인수를 제안했으나 이를 거절하고 역으로 모토로라의 투자를 이끌어냈다.

이에 따라 팬택은 연간 3억달러의 단말기를 수출할 수 있는 길을 보장받음과 동시에, 팬택의 기술력을 세계시장에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짧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기술력을 인정받으며 해외시장 진출을 통한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초석을 다진 팬택은 또 한 번의 도약을 위해 2001년 당시 매출 규모 1조원에 이르는 현대큐리텔을 가족으로 맞이한다.

박병엽 부회장은 당시 적자였던 현대큐리텔 인수에회사돈 대신 개인돈을 투자해 팬택이 위험에 빠지는 것을 회피시켰을 뿐 아니라 홀로 인수 작업을 마무리함으로써 경영자, 협상가의 진면목을 드러냈다.

세계 시장을 향해 기지개를 펴다

현대큐리텔 인수를 통해 팬택은 R&D 인력만 650명을 확보하게 됐다. 또한 연간 40개 이상의 독자 모델 개발, 생산대수 1,200만대 이상, 달러 매출액 기준 50대 기업의 거대 단말기업체로 변신해 국내에서 대기업들과 본격적으로 경쟁하게 된 것은 물론 세계시장에서도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 팬택은 삼성전자와 애플이 점령한 세계 휴대폰 시장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꾸준히 신제품을 출시하며 저력을 과시했다. 사진은 지난 9월에 있었던 베가레이서3 출시 현장에서 이준우 부사장(가운데)이 모델과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아울러 그 시너지 효과로 2002년 미국 오디오박스와 당시 휴대폰 수출사상 세계 최대 규모인 약 1조원에 달하는 휴대폰 500만대 수출 계약을 성사시키기에 이른다.

기업 내적 성장과 해외시장에서 글로벌 브랜드 사업을 위한 인프라 구축을 성공적으로 완료한 팬택은 2002년 내수시장 브랜드(큐리텔) 마케팅에 돌입한다.

그리고 그동안의 축적된 기술과 제품 경쟁력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전국 규모의 A/S망 구축과 최고 품질의 휴대폰을 적정한 가격에 공급하겠다는 전략을 통해 소비자에 다가간다.

그 결과 국내 최초 33만화소 카메라폰, 위치추적 기능을 갖춘 GPS폰 등을 잇따라 내놓으며 국내 진출 3개월 만에 빅3 자리를 확고히 구축해 경쟁업체들을 긴장시킨다.

2005년 팬택은 세계 휴대폰 시장 Big5를 향한 또 하나의 승부수를 던진다. 프리미엄 브랜드 ‘스카이’를 팬택의 또 하나의 가족으로 맞이했으며, 이로 인해 팬택은 당시 ‘큐리텔’이 확보하고 있던 친근한 이미지와 ‘스카이’의 고급 이미지를 조화시켜 휴대폰 시장에 풀 라인업을 갖추게 된다.

이를 통해 팬택은 매출 3조원, 종업원 수 4,500여 명(연구인력 2,500여 명)의 초대형 기업으로 성장한다. 같은 해 팬택은 국내 휴대폰 제조사 최초로 일본시장 진입에 성공하면서 글로벌 기업의 면모를 유감없이 과시하게 된다.

이는 일본 휴대폰 시장에 여타 외국기업이 진출한 예는 전무후무했기에 더욱 큰 의미를 갖는다. 일본에서 외국기업 최초로 밀리언셀러에 등극되는 등 2008년까지 두 번의 밀리언셀러 폰을 탄생시키는 진기록을 세웠으며, 이는 일본 휴대폰 시장이 급속도로 냉각돼 시장규모가 약 30% 가량 축소되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이뤄낸 값진 성과다.

창업 이후 15년 동안 연평균 성장률 56%를 육박하며 한국 기업사를 새롭게 써온 팬택은 1조원의 매출을 달성한지 2년만인 2003년에 2조, 2005년에 3조를 넘기는 경이적인 성장세를 이어가며 한때 전 세계 휴대폰 업계 7위에 등극하는 성공가도를 달리기도 했다.

도전으로 극복한 단 한 번의 시련  

2006년부터 불기 시작한 휴대폰 시장에서의 모토로라 ‘레이저’ 쓰나미로 인해 전 세계 휴대폰 강자들이 모두 휘청거리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이에 팬택은 창업 이후 가장 큰 위기상황에 봉착한다. 박병엽 부회장은 자신의 전 재산을 내놓고 수 십 차례에 걸친 채권단 설명회를 개최해 99.9% 이상의 동의를 얻어 2007년 자발적 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이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의 공백아래 추진된 국내 기업 역사상 최초의 사례다. 아울러 팬택의 기업개선작업은 ‘최초’와 ‘혁신’ 사례를 잇달아 남기며 현재까지도 대한민국 기업 구조조정 역사의 모범사례로 일컬어진다.

위기 이후 팬택은 선택과 집중 전략을 구사하며 국내에서는 시장의 변화를 예측한 다양한 3G폰의 출시로 내수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회복해 나갔다. 또한 해외에서는 혁신적인 기술력과 도전정신이 빚어낸 제품들로 품질에 대한 신뢰를 쌓아가며 독자적인 행보를 이어가 메시징폰이라는 블루오션을 창출해 트렌드를 선도하며 기초 체력을 회복해 나가기 시작했다.

팬택의 메시징폰은 차별화된 제품기획과 디자인, 적기 출시를 통한 시장 선점을 통해 미국 메시징폰의 트렌드를 선도하게 된다.

위기 극복은 또 다른 '전략'

팬택의 위기 극복 전략의 핵심은 기본적인 자원과 지출은 고정(FIX)하고 효율을 극대화(MAX)시키는 ‘FIX & MAX’ 전략. 다양했던 시장을 미국과 일본, 멕시코를 중심으로 한 중남미로 집중했으며, 내수 시장에서는 프리미엄 브랜드인 ‘스카이’를 앞세워 단위 모델 당 판매량을 극대화시키는 전략으로 궤도를 수정했다.

▲ 서울 마포구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 내에 위치한 팬택 사옥.
또한 11부문 41본부를 3부문 29본부로 통폐합해 슬림하면서도 전문적인 조직으로 재구축했다.

게다가 효율성 제고와 스피드한 의사결정을 위해 CEO가 총괄하는 부문단위 조직으로 변경하면서 명확한 책임규명과 동시에 협업을 통해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능하도록 개편했고, 40대의 젊고 새로운 부문장들이 열정을 가지고 조직의 활력을 불어넣게 해줌으로써 경영효율을 극대화시켰다.

그 결과 팬택은 2007년 4월 기업개선작업 개시 후 곧바로 3분기부터 영업이익을 달성하고 지속적으로 안정적인 흑자기조를 유지했다.

또한 팬택은 2009년 8월 미국 퀄컴사와 7600만 달러 출자전환을 통한 투자 계약을 체결하면서 팬택의 기술력이 세계적인 브랜드와 경쟁해도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특히 2010년에는 국내에 새롭게 불어닥친 스마트폰 열풍에 팬택 특유의 기술력과 속도전으로 국내 최초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출시하는 등 경쟁기업들을 놀라게 하는 제품을 꾸준히 시장에 내놓았다.

팬택은 지난해 국내에서만 300만대 이상의 스마트폰을 판매하고 있으며, 이는 전년 대비 약 200%이상 성장한 무서운 판매 속도다.

또한 팬택은 지금까지 국내에서 가장 많은 12종 18개 모델의 스마트폰을 출시하며 안드로이드OS에 대해 기술력, 전문성, 노하우 등을 가장 많이 축적한 IMD(Intelligent Mobile Device)회사로 꼽힌다.

특히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올해 3분기까지 국내 스마트폰 판매량 기준으로 팬택이 LG전자보다 앞선다고 최근 발표 했다.

국내 스마트폰 시장 판매량에서 팬택은 3분기까지 239만9600대를 팔아 16.2%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반면 LG전자는 234만5600대로 15.8%에 그쳤다. 팬택은 치열한 국내 스마트폰 시장에서 업계 2위를 유지하며 존재감을 증명한 것이다.

▲ 박병엽 팬택 부회장은 그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기업의 핵심가치를 뭘로 볼까 끊임 없이 고민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박 부회장을 비롯한 회사의 노력은 기업개선작업이 개시된 2007년 3분기 이후 2009년 4분기까지 10분기 연속 영업 흑자라는 성과로 나타났다.

아울러 국내최초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삼성전자와 LG전자에 앞서 출시하며 스마트폰 시장을 국내제조사 보다 발 빠르게 공략하는 대이변을 연출하기에 이르렀다.

팬택은 지난 5년간 최대의 위기를 맞았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외부에서는 팬택이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시선도 있었지만 보란 듯이 다시 일어났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기업개선작업 개시 직후 바로 흑자로 전환하고 연속적으로 영업이익을 달성하는 회사, 20년간 대기업의 주력 사업분야에서 경쟁해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기업은 팬택뿐이다.

현재 IT산업의 지형도는 끊임없이 거칠게 바뀌고 있다. 팬택은 이에 움츠러들지 않고 2015년 매출액 10조원, 판매수량 4천만대 이상 달성해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모바일 디바이스 제조사로 성장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격한 경쟁이 이어지는 IT시장에서 팬택은 꾸준한 혁신과 노력으로 승자로서 모바일 디바이스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 오늘도 스스로를 채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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