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조국판 “민중은 개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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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조국판 “민중은 개돼지”
  • 송병형 기자
  • 승인 2019.08.29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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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형 정경부장
송병형 정경부장

2016년 교육부 고위관료의 “민중은 개·돼지” 발언은 가면 아래 감춰진 한국 엘리트의 본색을 알린 충격적 사건이었다.

당시 교육정책을 총괄하는 직책(정책기획관)을 맡고 있던 나향욱 씨는 경향신문 기자들과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나는 (우리나라도 미국 사회처럼)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영화 ‘내부자들’의 멘트를 인용해 “민중은 개·돼지”라고 했다.

나씨는 깜짝 놀라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묻는 기자들에게 “개·돼지로 보고 먹고살게만 해주면 된다고 (생각한다)”고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또 “지금 말하는 민중이 누구냐”고 묻는 질문에 “99%”라고 했다. 한국 사회 상위 1%를 제외한 나머지 99%의 사람들은 개·돼지에 불과하며 먹고사는 정도만 배려해주면 된다는 주장이었다.

나씨는 스스로가 1%에 속하지는 않지만 거의 근접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기자가 “기획관은 어디에 속한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묻자 “나는 1%가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며 “어차피 다 평등할 수는 없기 때문에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기획관은 구의역에서 컵라면도 못 먹고 죽은 아이가 가슴 아프지도 않은가. 사회가 안 변하면 내 자식도 그렇게 될 수 있는 거다. 그게 내 자식이라고 생각해 보라. 우리는 내 자식처럼 가슴이 아프다”고 말하는 기자에게 “그게 어떻게 내 자식처럼 생각되나. 그게 자기 자식 일처럼 생각이 되나. 그렇게 말하는 건 위선이다”라고 했다.

현대 민주국가에서 공식적인 신분제는 존재할 수 없다. 나씨가 말하는 ‘신분제가 공고화된 사회’란 계층 사다리가 사라진, 특권층을 위한 제도가 고착화 된 사회였다. 그는 “미국을 보면 흑인이나 히스패닉, 이런 얘들은 정치니 뭐니 이런 높은 데 올라가려고 하지도 않는다. 대신 상·하원… 위에 있는 사람들이 걔들까지 먹고살 수 있게 해주면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출발선상이 다른데 그게 어떻게 같아지나. 현실이라는 게 있는데”라고도 했다.

놀랍게도 나씨는 2009년 한 강연회에서 친서민 교육정책을 홍보하면서 “누구든지 능력과 의지만 있으면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고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사회를 교육으로 실현하겠다”고 역설한 사람이었다.

필자가 나씨의 발언을 상세히 소개한 것은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조국 씨 논란 때문이다. 조씨는 나씨의 문제 발언이 있기 4년 전인 2012년 자신의 트위터 글을 통해 “모두가 용이 될 수 없으며 또한 그럴 필요도 없다. 개천에서 붕어, 개구리, 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하늘의 구름을 쳐다보며 출혈경쟁하지 말고 예쁘고 따듯한 개천을 만드는 데 힘을 쏟자”고 했다. 이때는 강남 특권층의 특권적 진학코스를 걸은 자신의 딸이 고려대에서 서울대 의전원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그가 말한 붕어나 가재는 어쩌면 개나 돼지의 다른 표현이 아니었나싶다.

사람들은 나씨 발언이 알려졌을 때 어떻게 고위관료가 기자 앞에서 이런 말을 당당히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조씨의 경우도 갖가지 의혹이 알려졌을 때 사람들은 이런 사람이 어떻게 청문회를 겁내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마도 “민중은 개·돼지”라는 생각이 인식의 기저에 깔려 두려움 자체가 없었는지 모르겠다. 하긴 ‘강남좌파’라는 비판적 용어에 조씨의 지지자들이 ‘좌파라고 해서 강남 특권층처럼 살지 말란 법 있느냐’고 비호하니 대담해졌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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